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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훈 국가정보원장 후보자가 29일 국회 정보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국정원은 정권을 비호하는 조직이 아니다. 앞으로 국정원은 국내 정치와 완전히 단절될 것”이라고 밝혔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 문제는 어떻게 제도화해서 실천하느냐는 것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간 국정원은 정권 유지 및 재창출의 수단으로 악용됐다. ‘댓글 사건’이 보여주듯 국정원은 2012년 대선에 불법 개입했고 그 덕을 본 박근혜 후보는 대통령이 되었다. 국정원의 국내 정치 개입과 사찰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지난해 국정농단 사건 국회 국정조사 과정에서는 국정원이 양승태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를 사찰한 정황이 드러났다. 멀쩡한 공무원을 간첩으로 몰다가 들통나고, 극우 단체에 자금을 대주며 관제 데모를 지시한 정황도 있다. 서 후보자는 “취임하면 국민 신뢰를 잃게 만든 사건에 대한 조사를 실시해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옳은 말이다. 국정원 개혁은 과거의 불법 행위를 조사해 반성하는 것으로 출발해야 한다.

서훈 국정원장 후보자가 29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권호욱 기자

그러나 국정원 개혁은 말처럼 쉽지 않다. 국가 기밀을 다루고 보안을 요하는 조직 특성상 기본적으로 외부 감시와 견제가 어렵다. 그러다 보니 국정원 개혁은 늘 셀프로 이뤄지고, 시간이 지나면 흐지부지됐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국정원은 요원들의 정부·공공기관 출입을 금지하고 관련 조직을 폐지·축소하겠다고 했지만 지키지 않았다. 게다가 서훈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발언 중에는 문재인 대통령 공약과 다소 배치되는 내용이 있어 정부의 국정원 개혁이 벌써부터 후퇴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서 후보자는 국정원의 국내 정보수집 업무를 전면 폐지하겠다는 문 대통령 공약과 관련해 “국내 정보와 해외 정보가 물리적으로 구분되기 어렵다”고 밝혔다. 국정원의 수사기능을 폐지하겠다는 공약에는 “(국정원의) 대공 수사력이 약화돼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서 후보자 말대로 국내 정보와 해외 정보가 무 자르듯 구분되지 않고, 대공 방첩 수사에 국정원이 전문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이 국정원의 국내 정보수집 업무와 수사기능 폐지를 공약으로 제시하고, 시민들이 이를 지지한 이유는 국정원의 권한 남용을 차단하고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의 국정원 개혁 공약이 후퇴해서는 안된다. 그것이 국정원이 살고 대한민국이 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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