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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파격인사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잃었던 나라를 되찾은 기분” “뉴스 보는 게 힐링이 될 줄 몰랐다”고 했다. 이런 인사가 어떻게 이뤄진 것인지 1주일 전 청와대 고위관계자에게 물어봤다.

“진영의 틀에서 벗어나 남녀를 가리지 않고 인재를 찾았다. 인재 풀을 최대한 넓혀서 보니까 그런 게 보이는 것 같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를 낙점하고 검증팀에 넘긴 뒤 제발 뭐 큰 게 나오지 않길 기도하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 순항만 계속되겠는가. 첫 충돌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인사청문회, 정부조직법, 일자리 추경일 것이다. 지금으로선 인사 문제를 무사히 넘어서는 게 가장 중요하다. 정부조직 개편은 중소기업벤처부와 안전 분야 일부 등으로 최소화할 계획이다. 어차피 내년 개헌 과정에서 정부조직에 상당한 변화가 요구될 것이다. 지금 정부조직 개편까지 손을 대면 다른 건 못한다. 일자리 추경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본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가 29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 인근에 마련된 임시사무실을 나서며 딸의 위장전입 문제에 대해 해명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그의 예상은 맞았다. 인사부터 암초에 부닥쳤다. 취임 20일 만이다. ‘사이다 인사’는 톡 쏘는 청량감은 줬다. 하지만 선(先) 인물, 후(後) 검증은 결국 사달을 냈다. 야당의 반발은 일견 당연하다. 더불어민주당이 지금 야당이래도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고, 지난 정권에서 실제 그랬다. 더구나 이번엔 문재인 대통령이 먼저 약속했던 인사 5대 원칙 위배 논란이 더해졌다. 당연히 솔직한 설명이 필요했다. 비서실장을 통해 대리 사과한 것은 문재인답지 않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주요 사안은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브리핑하겠다”고 했다. 일흔 번에 일곱 번이라도 직접 나섰어야 했다.

노나라의 계강자라는 정치인이 공자에게 정치란 무엇인지 물었다. 공자는 “정치 정(政)의 본뜻은 바를 정(正)이다. 정치인이 자신을 바르게 정하고 아랫사람에게 모범을 보인다면 어찌 바르게 되지 않겠는가”라고 했다. 리더부터 바른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29일 직접 해명한 것은 정도(正道)다. 협치를 요구하려면 먼저 협치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한 손으로는 매듭을 풀 수 없다.

야당은 여기서 멈추는 게 옳다. 절망적 상황에서 출범한 새 정부다. 반발도 정도껏 해야 한다. 지금 야당만 모르는 게 있다. 첫째는 자격이다. 지금 야당이 문재인 정부를 돌로 칠 자격이 있느냐고 시민들은 묻고 있다. 이들은 병역 면탈, 부동산 투기, 세금 탈루, 논문 표절, 위장전입과 과연 무관한가라는 의심을 품고 있다. 결함투성이 국회의원들이 인준권을 쥐고 호통치는 모습은 갑질의 횡포로 비치고 있다. 불공정이다. 지금의 야당이 정권을 잡고 있던 시절 그보다 더한 인물도 인사를 강행했던 것을 시민들은 기억하고 있다. “시민들이 나서 국회의원들을 검증해보자” “다 까보자” “선거가 얼른 왔으면 좋겠다”고들 한다. 중요한 건 시민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면 세상이 바뀐다는 인식을 갖게 됐다는 점이다.

둘째는 변화다. 세상은 달라졌다. 김무성의 ‘노 룩 패스’를 시민들은 더 이상 묵묵히 바라보고만 있지 않는다. 김무성이 보좌관에게 보낸 캐리어 패스 방법을 ‘노 룩 패스’로 명명했고, 과거의 유사 갑질을 더 찾아냈고, 그 행위 뒤편에 숨겨진 인성을 고발했다. 시민은 우매하고 약한 듯이 보이지만 실은 강하고 현명하다. 마치 망명객처럼 이역만리에서 일일논평하고 있는 홍준표의 페북 소음도 언제까지 인내만 하고 있진 않을 것이다.

셋째, 야당은 시민의 힘을 간과하고 있다. 시민은 불의한 권력을 무너뜨린 주역이다. 집단지성으로 무장한 시민 앞에 언론도 패러다임 전환을 실감하고 있다. 언론의 계몽주의 시대는 지나고 오히려 시민들이 언론을 분석·평가하는 시대가 펼쳐지고 있다. 어제 여론조사 결과 이낙연 총리 후보자 인준 찬성은 72.4%, 반대는 15.4%였다. 만약 야당이 총리 인준안을 붙잡고 계속 발목을 잡을 경우 시민들은 대의(代議)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왜곡된 대의기관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곧 길이 됐다. 희망은 땅 위의 길과 같다. 시민들은 새로운 민주주의를 경험하고 있다. 나라다운 나라가 이런 것이구나라고 실감하고 있다. 여태껏 몰랐던 경험에 시민들은 희망을 갖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진화하고 있다. 진화한 시민들이 길을 내고 있다. 한 단계의 성취는 더 높은 성취로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후퇴하지 않을 것이다.

박래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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