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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희의 아버지는 성실한 가장이자 사회적으로도 성공한 직장인이다. 전업주부인 어머니는 평생 알뜰히 살림을 하고 아파트 평수를 늘려갔으며 아이들 교육에 헌신했다. 명희는 덕분에 소위 명문대학에 합격했고 겉보기에 구김살 하나 없이 학교생활을 하는 것 같았다. 자살을 시도하고 우울증 진단을 받기까지 명희는 ‘문제없는’ 젊은이였다. 알고 보니 명희의 아버지는 가부장적 권위주의로 가족을 통치했고 어머니와 아이들에게 폭언을 일삼았으며, 간혹 여자 문제로 어머니의 속을 썩이기도 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어머니는 교회 봉사 이외 모든 시간을 아이들의 일거수일투족과 학업을 강력히 통제·관리하는 데 몰두했다. 어린 시절 사촌오빠에게 성폭행을 당한 명희에게 딸의 행동거지를 꾸지람하며 입막음을 강요한 사람도 어머니였다. 명희는 부모를 기쁘게 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칭찬받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했고, 갈등적 상황에는 최대한 침묵하거나 회피하는 것이 살길이라고 학습했다. 한 번도 자신이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것인지, 심지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조차 알지 못한 채 부모의 위선을 지켜보며 공부하는 기계로 키워졌다. 

질문되거나 해석되지 않은 채 봉합된 경험은 성인이 되자 비로소 균열을 일으키며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거나 학교에서 인권 수업을 수강하면서, 사회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동아리 활동을 통해 어렴풋이 문제를 깨닫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 명희는 스스로 가족의 희생자라 여기며 부모에 대한 복수의 방안으로 자살을 결심했던 것이다. 그런데 알고 보면 명희의 부모도 다른 결의 ‘가족 문제’를 겪고 있었다. 

가난한 시골 농부의 장남으로 태어난 아버지는 명석한 두뇌와 남다른 성실함으로 서울의 명문대학에 합격했고 밤낮없이 일한 덕분에 대기업의 이사로 승승장구하며 온 가족의 자랑이자 대들보가 되었다. 돈 버는 기계로 살아가도 되는지에 대한 질문은 폭음과 폭력적 행동으로 표현되기도 했다. 5남매의 둘째이자 장녀로 태어난 어머니는 별로 똑똑하지 못한 남자 형제들의 학비를 대느라 대학 진학을 포기해야만 했고, 성실하고 능력 있는 남자가 최고라는 생각에 아버지와 결혼했다. 낮은 자존감은 물질적인 보상 심리로 더욱더 강화되고 못다 한 공부에의 한은 자식들에게 투사되었다. 개인적 원망과 울분은 교회를 통해 해소해 왔다. 두 사람은 모두 가족을 위해 진심으로 헌신했고 ‘가족의 성공’을 위해 개인의 삶을 포기했다고 여긴다. 

사실 명희네 가족은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다. 가족과 가족 간 거래이자 이성애 남녀의 법적 계약이며, 성별 고정관념이 가족통치의 핵심 가치로 작동하고, 물질적 기준으로 타인의 삶을 재단하는 편견이 보편화된 사회에서 우리는 일면 희생자가 되어 왔다. 어린 시절부터 ‘이상적’ 가족과 사회의 모습을 구현시키는 도구로 충실할 때 칭찬을 받았고 남다른 질문을 하거나 튀는 행동을 하면 꾸지람을 들으며 성장했다. 다른 사람들이 들어서 좋을 말,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해 주는 행동을 체득하기 위해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연습을 하지 못했다. 행복한 삶이라 여겨지는 행동과 물건을 갖추는 일이 내가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질문하는 일보다 더 중요하다고 배웠다. 남 보기에 그럴싸한 모습 이면에 긴장과 갈등, 모순과 위선이 가득한 상황을 지켜보면서 거짓 자아와 진정한 자아 사이의 균열을 체득했다. 자신의 참모습을 알아주지 못하는 사회에서 고립감을 경험하지만 정작 타인과 관계 맺는 법을 알지 못하고, 억눌린 감정은 때때로 폭력적인 행동으로 폭발하기도 했다. 

5월은 가정의달이다. 껍질만 남은 허망한 구호가 아니라 ‘이상적 가족의 신화’를 성찰하고 허물어뜨리는 일부터 시작하자. 우리는 각자 어떤 가족에서 자랐으며 어떤 가족을 상상하고 가꾸어 왔는가. ‘이상적 남편’ ‘이상적 아내’ ‘이상적 자녀’라는 명분에 매달려 정작 개인에 대한 질문을 회피하지는 않았는가. 남의 눈을 의식해 겉모습을 꾸미고 위장하며 가면이 벗겨질까 전전긍긍하는 사이 나의 자아는 파괴되고 있지 않았는가.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자녀였지만 누군가의 아내나 남편, 부모가 되는 일은 선택일 수 있음부터 인정하자. 독립된 개인과 개인의 관계 안에 사랑을 위치 짓고, 함께 살아가고 성장하는 친밀성의 잠정적 결사체로 가족을 다시 상상하자. 비로소 영롱히 빛나는 자아들이 연결된 평등한 ‘가족들’의 세상이 시작될 것이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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