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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19일, 황망한 소문이 전국청을 덮쳤습니다. 초임검사가 부장의 폭언·폭행을 견디지 못해 자살했다고. 오전부터 전해지는 흉흉한 말들은 놀라웠고 상가를 다녀온 후배들의 분노는 뜨거웠지요. 가해자가 유족에게 유서를 전달하고 그 곁을 지키는, 지휘책임 있는 검사장이 검사들에게 ‘우리 모두의 잘못’이라며 책임을 나누는 상가는 무간지옥입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알았지만,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어떤 조치도 없었습니다. 2015년 4월9일, 그 초임의 첫 회식에서 또 다른 부장이 공연히 저지른 성범죄가 덮였던 것처럼. 검찰에선 그런 범죄들은 사소한 해프닝에 불과하거든요.

저도 죽고 싶었던 적이 있습니다. 2003년 5월 부장에게 성폭행 당할 뻔한 후 사표를 요구했다가, 지청장의 지시 같은 주선으로 합의를 시도하려는 부장을 만나야만 했던 악몽 같던 저녁. 빗길을 달리는데, 가로수를 들이받고 실려갔으면…, 싶었거든요. 가속페달을 밟으려다 말고 정신을 겨우 차렸지요. 후배의 자살은 그때 읊조리던 비명 같은 주문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난 아무 잘못이 없는데, 내가 왜? 그리고, 홍영아, 도대체 네가 왜?

“세상이 모두 내 것 같았을 한 젊은 영혼이 2년도 채 되지 않아 왜 허무하게 세상 밖으로 떠밀려야 했는지 우리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후배의 비틀거림을 외면했던 못난 선배들의 미안함이 사무쳐 우리는 지금 숨이 막힙니다.” 하릴없이 내부망에 애도글을 올리고, 검사장에게 항의메일도 보냈지만, 가해자에 대한 수사와 감찰 움직임은 전혀 없었지요. 유가족 인터뷰 등으로 외부에 알려져 여론이 들끓던 7월, 비로소 감찰에 착수하여 우여곡절 끝에 해임시켰습니다만, 검찰은 가해자를 끝내 처벌하지 않았고 유족은 아직 사과받지 못했습니다.

무죄구형 강행 후 속칭 ‘검사 블랙리스트’인 집중관리 대상 검사 명단에 올라 검사 부적격자로 몰려 퇴출될 뻔하고 노골적인 감시와 지독한 배제에 숨이 막혔었지요. 징계취소소송을 통해 5년 만에 누명을 벗고 징계권과 인사권을 오남용한 자들에 대한 문책과 사과를 기대했습니다. 그게 제가 배운 정의니까요. 승소 확정 후 상급자가 흐뭇하게 묻더군요. 이젠 괜찮냐고. 단호히 답했지요. “저는 무죄판결을 받았을 뿐 저들이 유죄판결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문책과 사과를 원합니다.” 가당치 않은 과욕을 부린다는 듯 황당해하더군요. 그 간부를 보며 무죄구형으로 검사의 의무를 다한 것으로 착각했던 지난날의 제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달았습니다. 무죄구형과 판결은 불의를 걷어내는 단초일 뿐 바로 선 정의라 할 수 없고, 사과와 용서, 화해의 완성이 아니라 미약한 시작일 뿐이지요.

처음으로 돌아가 고(故) 김홍영 검사를 다시 부릅니다. 2015년 4월1일 용기 있고 바른 검사가 되겠노라 선서하고 임관한 김 검사는 첫 환영회식에서 경악했을 겁니다. 거침없이 추행하는 부장과 속수무책인 검사들이 만드는 부조리한 풍경은 검사선서문과 너무도 달랐으니까요. 부장의 추행이 그전부터 계속된 것임을, 추행범은 부장만이 아님을 곧 알게 되었고, 검찰이 성폭력 범죄를 덮고 거짓 해명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멋져 보였던 선배들이 거짓말 혹은 침묵과 방관으로 협력하는 걸 속수무책으로 지켜보던 그때, 그의 영혼은 말라갔을 겁니다. 검사의 혼을 가진 자라면 도저히 견딜 수 없는, 하여 ‘죽은 검사들의 사회’에 갇혀버렸음을 알았을 테니까요. 2016년 갑질 피해를 입고 하소연할 데가 없던 김 검사는 결국 죽음으로 검찰에서 도망쳤습니다.

공익의 대변자인 검사는 수사와 기소로 범죄자를 처벌하여 법질서를 바로잡는 역할을 합니다. 하여 검찰의 잣대가 고장 나면, 합법과 불법이 뒤집혀 사회혼란이 초래될 수밖에 없고, 검찰 내부의 정의가 무너지면 대한민국 정의는 도미노처럼 차례로 무너지게 되지요. 사회정의를 바로 세우려면 도미노 첫 칩에 해당하는 검찰의 정의부터 바로 세워야 하고, 검찰의 정의는 검찰 내부 범죄에 대한 엄중한 문책과 진심 어린 사과를 통해서만이 바로 세울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사회가 검찰 내부 범죄의 단죄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이유이고, 제가 동료들의 성난 비난에도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입니다. 김홍영 검사를 기억합니다. 그는 죽음으로 검찰을 고발했지요. 저는 그의 이름으로 넘어진 정의의 첫 칩을 바로 세우고, 살아있는 체하며 ‘말로만’ 법과 정의를 외치는 죽은 검사들을 향해 계속 외칠 겁니다. 

김홍영 검사의 죽음을 기억하라. 검사의 혼과 정의가 이미 죽었음을 기억하라. 그리고 이제 깨어나라.

<임은정 울산지방검찰청 부장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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