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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성폭력 2심 선고가 다가오고 있다. 1심 재판부는 지난해 8월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피해여성’이 TV 저녁뉴스에 직접 출연하여 차기 대선주자로까지 촉망받던 정치인의 성폭력 사실을 폭로함으로써 많은 이에게 충격을 주었으리라.  

안 전 지사에 대해 검찰은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간음,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 강제추행의 혐의로 기소했지만, 법원은 ‘위력은 존재했지만, 위력을 행사하지 않아서 간음과 위력 간의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고,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침해되었다고 볼 만한 피해자의 행위나 태도 등을 발견할 수 없다’는 취지로 무죄선고를 하였다.  

여기서 위력이란 ‘상대방의 의사를 제압할 정도의 유형력·무형력’으로 폭행과 협박뿐 아니라 지위와 권세의 이용까지 포함한다. 성적 자기결정권이란 성적 행위를 할 것인지 여부와 그 상대방 및 방법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하고, 성적 침해 행위를 방어하고 배제할 권리를 뜻한다. 그런데 법원과 실정법이 이런 권리를 선언하기만 하면 ‘선뜻’ 여성들이 그러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수행비서 성폭행 혐의에 대한 항소심 결심공판에 참석하기 위해 9일 오전 서울 서초동 고등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안 전 지사는 같은 혐의에 대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바 있다. 이준헌 기자

헌법재판소는 2009년 혼인을 빙자하여 간음한 남성을 처벌하는 ‘혼인빙자간음죄’가 여성의 성적 결정을 혼인과 결부시킨다는 점에서 구시대적이며, 혼인이나 남성의 의지에 따라 성적 결정을 하는 존재로 여성을 ‘유아시’한다는 이유 등으로 위헌결정을 내렸다. 또한 2015년에는 형법상 간통죄가 혼인제도 및 부부간 정조의 의무 보호라는 공익을 더 이상 실현하기 어려운 반면, 국민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지나치게 제한하고 있다 위헌결정을 내렸다. 이런 사회적 맥락 없는 성적 자기결정권의 어법에서 나는 자유보다는 비현실성과 허구성을 느낀다.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조건들은 아직 마련되지도 않았는데, 이미 가진 권리를 왜 행사하지 않았냐고 묻는 법의 태도는 목숨을 바꾸어 순결을 지키라는 ‘정조’개념과 무엇이 다른지도 의문이다. 바야흐로 성적 자기결정권의 시대가 적어도 법원에는 도래한 듯하다.   

성적 자기결정권과 관련해 안 전 지사 사건에서는 먼저, 그림자처럼 상관을 수행해 왔던 비서가 상관이 ‘안아달라’와 같은 말을 할 때 저항의 뜻을 선명하게 표명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성적 제안을 상관이자 남성 권력자로부터 받았을 때, ‘얼버무리는’ 의사표시야말로 ‘정상적 판단능력을 갖춘 여성’들의 자연스러운 저항이 아니었을까 한다. 둘째, 만약 이 남성 상관에게 언어나 물리적 수단으로 밀치고 거부의사를 밝혔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직장에서 떠나야 하는 사람은 그가 아니라 그녀였을 것이다. 거부의사를 밝혔으니, 간음과 추행의 ‘미수’로 판단받기는 어려울 것이고, 존경하는 도지사를 폄훼하는 그녀에게 공감을 표할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있었을까. 그녀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셋째, 안 전 지사와 피해여성의 관계란 단지 두 사람의 관계가 아니라 다른 수행원, 직원 등 수백명의 조직 속에 ‘놓여진’ 관계이다. 그들은 안 전 지사와의 인연으로 직장을 갖기도 했을 것이고, 무엇보다 안 전 지사는 그들 모두에게 상징적 자산이었을 것이다. 이것이 체계 속에 ‘위치한’ 성폭력의 모습이다. 나는 상상한다. 그녀가 안 전 지사의 성적 제안과 행위에 저항을 포기했던 바로 그 지점, 밀치고 소리 지르고 알린다고 해도 별 승산이 없다고 느꼈을 바로 그 지점이 안 전 지사의 ‘위력’이 그녀의 몸과 머리와 신경선을 흘러내리며 다녔을 순간일 것이라고. 법원은 이제 물리적 권력을 넘어 사회적·관계적 권력에 대한 법리를 구성해야 한다. 넷째, 이상한 점은, 어째서 1심 선고문 어디에도 피고인과 피해자가 ‘애정하는’ 사이라면 있어야 할 사귀었던 사실에 대한 적시가 없는가. 여전히 법원은, 언론은, 한국 사회는 여성이 ‘죽도록 저항하지 않으면’ 남성의 성관계에 은밀한 동의를 한 것이라고 간주하는 거대한 착각 속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피고인의 일방적인 성적행동을 법원은 미세하게 포획하여 그것이 바로 추행이고 성폭력이라고 선언해야 한다. 그리하여 일자리와 사회적 생명을 걸지 않아도 되는 성적 자기결정권리를 만들어가야 한다.  

최초 피해 발생 이후, 항변의 알고리즘을 만드는 데 8개월이 걸렸다면 피해여성은 매우 합리적인 여성인 것이다. 참고로, 가정폭력 피해자는 도움을 청하는 데 6년 이상의 시간이 드는 경우가 40%나 된다(한국여성정책연구원, 2016). 피해여성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 잘못은 대부분 너의 책임이라고 하는 젠더의 불평등구조가 건재한데도 그녀는 얼굴을 드러내고 만천하에 보고했다. 그것은 자신의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생명을 건 위태로운 성적 자기결정권의 행사였다.

<양현아 |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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