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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청와대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는 상쾌하다. 가장 감동적인 것은 세월호 기간제 교사들의 순직을 인정하라는 대통령 지시와 유족에게 직접 전화해서 위로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이 5·18 기념식에서 광주 시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진심 어린 기념사를 하고, 참가자들이 목청껏 ‘님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는 장면도 감격적이었다. 부창부수라더니 김정숙 여사가 민원인에게 컵라면을 대접하고 억울한 이야기를 들어준 뉴스도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일찍이 이런 일이 있었던가. 세상이 바뀌었음을 실감하게 된다.
몇 년 전 국회 광장에서 벌어진 일이 떠오른다. 2014년 10월29일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에서 시정연설을 마치고 차를 타러 걸어갈 때 광장에서 기다리던 세월호 유족들이 “대통령님, 살려주세요”라고 큰소리로 외쳤다. 그런데 대통령은 유족 쪽으로 눈길 한번 주지 않은 채 꼿꼿이 앞만 쳐다보며 걸어갔다. 마치 아무 소리도 못 들은 것처럼, 마치 거기에 사람이 없는 것처럼. 바로 두 달 전 한국 방문 닷새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세월호 유족들을 만나 위로했던 프란치스코 교황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김용민의 그림마당] 2017년 5월 16일 (출처: 경향신문DB)
순간의 차이가 인간의 품격을 말해준다. 우리는 이번에 인간을 사랑하고,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생각을 가진 대통령을 만나게 된 것 같다. 이런 심성을 가진 대통령이니 앞으로 난마처럼 얽힌 나라 일도 잘 풀어가지 않겠나 기대를 가져본다. 왜냐하면 지도자의 덕목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에 대한 사랑이니까.
옛날로 가보자. 정조 시대 흑산도 주민들의 주된 수입원은 약간의 어업과 종이 원료인 닥나무였다. 그런데 갑자기 닥나무 세금이 크게 올라 죽을 지경이 된 흑산도 주민 김이수는 흑산도 주재 관리에게 억울함을 호소했으나 돌아오는 것은 보복밖에 없었다. 그는 험한 뱃길을 마다하지 않고 나주, 전주 감영을 방문해서 진정을 했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불굴의 의지를 가진 김이수는 최후의 수단으로 왕에게 억울함을 호소하러 천리 먼길 서울로 갔다. 서울로 가며 김이수가 남긴 말이 있다. “서울에 성군이 계시니 가서 한번 아뢰어 보겠다.”
서울에 올라와 몇 달을 기다린 김이수에게 기회가 왔다. 정조는 조선왕조에서 궁궐 밖 출입을 가장 많이 한 왕이었다. 원통한 일이 있는 백성은 왕의 외부 행차 때 징을 울리며 아뢰면 민원이 접수되었다. 이를 격쟁이라고 한다. 조선 초기 때 만든 신문고를 연산군이 없애버려 억울해도 호소할 데 없는 백성을 위해 정조가 만든 소통방법이 격쟁이었다. 효자였던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 현륭원을 자주 참배했는데, 어느 추운 겨울날 능행길에 김이수는 격쟁에 성공했다. 현륭원을 다녀온 왕은 그날 접수된 백통이 넘는 민원서류를 꼼꼼히 읽고 일일이 지시를 내리고서야 잠자리에 들었다고 하니 과연 김이수 말대로 성군임에 틀림없다.
김이수의 민원에 대해 몇 달 뒤 왕에게 올라온 보고는 닥나무 세금을 깎아주면 전라감영에 세수 결손이 발생하니 들어주기 어렵다는 내용이었다. 보고서를 읽은 정조의 대답이 감동적이다. “손상익하(損上益下)하라(위에서 손해를 보고 아래에서 이익이 되게 하라), 그것이 국가가 할 일이다.” 200년 전 이러한 소득재분배, 복지국가 사상을 가졌던 왕이 지구상에 또 있었겠는가. 성군의 자질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힘없고 가난하고 억울한 백성에 대한 사랑이다. 지난 열흘 청와대에서 들려오는 낭보를 들으며 정의감 넘치는 문재인 대통령이 초심을 잃지 않고 분투노력해서 온 나라에 팽배해 있는 경제적 불평등을 축소하고, 비정규직 등 억울한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지도자가 되기 바란다.
이를 위해 두 가지를 말하고 싶다. 첫째, 지금의 감동과 찬탄은 오래가지 않고, 결국 중요한 것은 제도와 정책을 통해 적폐를 청산하고 새 시대를 여는 것이다. 개혁 완수만큼 국민을 통합하는 방법은 없다. 철저히 준비해 개혁을 올해 안에 완수한다는 각오로 임해주기 바란다. 내년 6월 지자체 선거에 맞춰 개헌 논의가 봇물을 이룰 것이니 개혁과 적폐청산의 적기는 올해다. 밀턴 프리드먼은 새 정부는 반드시 반년 안에 중요한 일을 다 해야 한다고 말했다. 둘째, 대통령위원회의 중요성이다. 지금 재벌개혁, 복지증세, 비정규직, 양극화, 청년실업 등 과제가 산적해 있는데, 하나씩 떼어 각 부처에 맡기면 하나같이 해결이 어려운 난제 중의 난제다. 이들은 서로 연결된 문제라 대통령위원회에서 묶어서 양보와 타협을 통해 일괄 타결하는 게 더 쉬운 방법이다. 한때 수렁에 빠졌던 네덜란드, 아일랜드가 위기를 탈출하고 경제기적을 일으켰던 비결이 바로 국가적 위원회에 사회단체 대표들을 모은 사회적 대화였다는 점을 상기해서 한국 실정에 맞는 사회적 대화 방법을 모색해주기 바란다.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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