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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처음 열린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은 새로운 대한민국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줬다. 문재인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새 정부는 5·18민주화운동과 촛불혁명의 정신을 받들어 이 땅의 민주주의를 온전히 복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참석자들과 손잡고 ‘님을 위한 행진곡’을 함께 불렀다. 대통령은 5·18에 태어난 지 나흘 만에 아버지를 잃은 딸과 눈물의 포옹을 했다. 5·18 희생자들의 이름을 한 명씩 거명하며 “그들의 헌신을 기리겠다”고 했다. 시민들은 “가슴속에 막혀 있던 것이 뻥 뚫린 느낌”이라고 했다. 지난 9년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분노와 슬픔의 역사가 끝나고 새로운 세상을 맞는 심경이 각별했기 때문일 것이다.

‘님을 위한 행진곡’은 민주화운동의 상징이자 민주주의 염원을 압축한 노래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합창단이 부르면 원하는 사람만 따라 부르는 합창 방식으로 바뀌었고, 이후 해마다 5·18 기념식은 이념 갈등의 장으로 변질됐다. 문 대통령은 “오늘의 제창으로 불필요한 논란이 끝나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진보·보수를 떠나 너무나 상식적인 얘기다.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7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참석자들과 손을 맞잡고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왼쪽부터 피우진 국가보훈처장, ‘님을 위한 행진곡’ 작곡가 김종률씨, 문 대통령, 정세균 국회의장, 김이수 헌재소장 권한대행,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청와대사진기자단

1980년 5월 전두환 군사독재에 맞선 광주시민들의 투쟁은 한국 민주화운동을 지탱하는 근간이었고, 1987년 6월항쟁과 지난해 촛불혁명을 이끌어낸 시원(始原)이었다. 광주는 민주의 가치와 인권과 평화가 무엇인지를 보여줬고 잠자는 시민의식을 일깨웠다. 문 대통령은 “5·18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겠다”고 했다. 늦었지만 당연한 처사다. 5·18민주화운동은 억압이 있는 곳에 저항이 있다는 인류 보편의 정신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문 대통령은 5·18민주화운동의 완전한 진상규명도 다짐했다. 5·18 진실을 온전히 밝히는 것은 희생자들의 원혼을 달래는 일일 뿐 아니라 정의가 승리하는 나라를 만드는 길이기도 하다. 한데도 계엄군 헬기 기총소사, 국가기관의 조직적 왜곡과 날조 등으로 5·18 진실은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채 어둠 속에 은폐돼 있다. 지금껏 발포 명령자가 누군지도 명확히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러니 ‘북한군 특수부대가 침투해 일으킨 폭동’ ‘님을 위한 행진곡은 북한 찬가’라는 따위의 황당한 허위 주장이 난무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학살의 주범 전두환마저 회고록에서 “나는 광주사태의 제물”이라며 마음껏 5·18을 능멸했다. 늦었지만 국회와 정치권이 5·18진상규명위원회 구성, 특별법 제정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반가운 일이다.

문 대통령은 5·18이 박제된 과거가 아님을 웅변했다. “2년 전, 진도 팽목항에 5·18의 엄마가 4·16의 엄마에게 보낸 펼침막이 있었습니다. ‘당신 원통함을 내가 아오. 힘내소. 쓰러지지 마시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국민의 생명을 짓밟은 국가와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한 국가를 통렬히 꾸짖는 외침이었습니다.” 37번째 맞은 행사지만 이날 기념식은 특별했다. 5·18정신을 온전히 승계한 민주정부만이 국민의 생명을 굳건히 지킬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도 민주정부였다면 광주 민주화운동의 토대 위에 굳건히 서 있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로 인해 국민도 잃고 권력도 잃었다. 국가가 존재 이유를 잊으면 비극이 발생한다. 5·18은 항상 그 교훈을 일깨운다. 우리는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절대 멈추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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