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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언턱거리 하나 나왔다. 보수(라 쓰고 ‘적폐’ 또는 ‘수구’라 읽는다)라는 세력은 물 만난 고기인 양, 최저임금 인상 때문에 곧 나라가 망할 것처럼 선동에 나섰다. 근거 없이 그리스·브라질 같은 나라와 비교하거나 이주노동자까지 들며 오금을 당긴다. ‘경제논리’를 내세운 언론과 ‘전문가’들도 저마다 우려를 쏟아낸다. 딴에는 실물경제를 좀 안다는 자들은 더욱 말에 날을 세워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고 포퓰리즘을 저주한다.
저마다 말포장은 영세 자영업자들과 나라 경제에 대한 걱정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대개는 시작도 안 한 경제개혁에 대해 초를 치는 것이거나 기득권에 기댄 이념 공세에 다름없어 보인다.
새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선순환이 어떤 경제학적 고리들로 달성되는지, 그리고 최저임금 인상이 어떤 궁극적 효과를 가져올지 잘 모른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몇 가지는 안다.
[장도리]2017년 7월 17일 (출처: 경향신문DB)
첫째, ‘보수’는 물론 소위 ‘경제 전문가’들도 세사나 경제를 잘 모르기는 매한가지라는 것. 단지 국내 상황에 한정되지 않을 수많은 변수들이 상호작용하여 어떤 결과를 낼지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경제 전문가’는 몇이나 될까? 그들 ‘전문가’나 보수세력이 진정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과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하는 마음을 가졌다면, 세상에 경제위기나 정책 실패는 없어야 하고 그로 인해 피해를 보는 서민도 없어야 한다.
몇몇 경제학자들이 고백하듯 경제학조차 다른 인문·사회과학처럼 과학보다는 이데올로기에 더 가까이 있다. 성실한 경제학이 ‘과학’을 추구한다 해도 그 대상은 자연과학이나 공학의 그것과 다르다. 그중 어떤 ‘경제학 논리’는 기본 인간관·사회관 자체가 진리와 거리가 멀다.
둘째, 어떤 경제 정책의 성패 여부에는 ‘경제’ 바깥에 있는(것처럼 뵈는) 정치와 여론이 무척 중요한 변수라는 점. 우리는 노무현 정부의 경제·부동산 정책이 어떻게 실패했는지 기억하고 있다. 끈질긴 비협조와 잔혹한 저주, 그리고 스스로의 불철저함과 한계 때문에 주저앉지 않았던가? 그들은 대기업의 해외 투자도, 국제환경의 악화도, 모두 ‘노무현 탓’ ‘좌파정권 탓’으로 돌렸었다.
최저임금 인상 문제를 둘러싼 최악의 상황을 상상해보자. 1)야당·보수언론 등이 향후에 있을 수 있는 모든 경제적 불안정이나 일부의 고통을 최저임금 인상 탓으로 계속 선동한다. 2)극우 단체와 일부 기득권층이 최저임금 인상이나 ‘좌파’ 문재인 탓에 나라 망한다고 SNS 등에서 부르댄다. 3)우파·주류 ‘경제 전문가’들이 몇 가지 경제학적(?) 지표를 들어 1), 2)를 증명(?)하고 개혁에 역행하는 언어를 프레이밍한다. 그래서 1), 2)가 더 강화된다. 4)중간·중립층의 불안도 커진다. 여권 내부의 신자유주의자들이나 ‘경제 전문가’들도 회의를 표명한다. 5)지자체 선거가 다가오고 불안이 커진다. 결국 논란과 갈등 끝에 애초의 경제민주화 공약과 노동 관련 정책의 기조가 포기되고 누더기 정책만 남아 표류한다. 6) 2018·2019년 최저임금 인상은 0% 또는 30원쯤 인상. 7)흙수저는 그냥 평생 흙수저로, ‘저녁이 없는 삶’은 ‘저녁이 없는 삶’ 그대로.
기억하고 싶다. 그나마 촛불의 힘으로 이렇게 어렵게 시급이 1060원 오르고 월급이 겨우 200만원대로 진입하는 동안, 누워서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수조원을 번 사람들도 있고, 한 푼도 세금을 내지 않고 큰 종교 기업을 운영하는 분들도 많고, 한 푼도 세금을 안 내고 영세 자영업자들의 고혈을 빠는 지주·부동산 임대업자들이 많다는 사실을.(‘다주택자 월세소득 연 20조…18조는 세금 한 푼 안내’(한겨레) 2017·7·13)
그래서 한편 정성을 다해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보완대책을 집행하고 벌써 귀가 얇아진 사람들을 설득하고, 또 한편 단호하게 ‘우리 이니’를 옹호해야 할 영역은 바로 여기가 아닌가? 청와대 행정관의 여성관이나 이미지정치 연출 능력이 아니라 말이다.
‘최저시급 1만원’의 의미는 단지 ‘경제’가 아닐 것이다. 저임금·장시간 노동에 기반을 둔 성장모델을 바꾸고, 노동 혐오·노동 분할의 연쇄로 된 ‘헬조선’의 정치·문화 재생산의 고리를 끊는 중요한 실천일 것이다. 분명 시간과 인내가 필요할 것이다. 양극화사회에서 복지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증세가 필요하고, 대기업과 초고소득자는 물론 중산층의 세금 분담도 필요하다. 여전히 촛불 시민들은 문재인 정부와 함께 갈 태세가 돼 있다고 생각한다. 경제정의·조세정의의 원칙을 틀어쥐고 계속 나아가기 바란다.
천정환 | 성균관대 교수·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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