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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는 대통령을 탄핵의 심판대에 올려놓았다. 대통령은 국민이 위임한 통치권력을 삿된 비선조직에 넘겨 국정을 농단하고, 세월호 등 수많은 재난과 사고에서 직무유기와 무능함으로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구히 확보’(헌법 전문)한다는 국가의 존재 목적조차 저버렸다. 우리는 광장의 돌팔매를 대신한 탄핵의 절차로써 대통령이 벌인 탐욕과 불통의 막장드라마를 종결짓고자 한다.

사실 탄핵심판은 이 패악의 대통령에게 공식적이고 영구적인 징벌을 내리는 하나의 요식적인 법 절차에 불과하다. 지금 진행 중인 특별검사나 국정조사 또한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우리가 여기에 국정농단 사건의 조사와 심판을 맡기는 이유는 따로 있다. 우리가 원하는 세상을 그들의 입으로, 그들의 통치용어로 되뇌게 함으로써 그들이 통치자가 아니라 우리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종복임을 다시금 확인시키고자 하기 때문이다.

특별검사의 수사부터 보자. 특별검사를 지배하는 화두는 의당 진실이다. 물론 형사처벌을 전제로 하기에 그가 밝혀내는 진실은 초미세의 한정된 부분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와 더불어 특별검사의 수사는 우리로 하여금 저 권력집단들의 흉포한 속성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해 주어야 한다. 대통령이나 재벌 총수들의 언동 하나하나에서 직권남용과 강요와 뇌물의 죄책을 가려내는 수준을 넘어야 한다. 그들의 범죄적 행태들이 어떻게 정경유착의 고리를 구성하며,우리를 ‘개, 돼지’로 내몰 수 있는 그들의 권력은 도대체 어떤 모습으로 썩어가고 있는지, 그 복면 뒤의 정체를 하나하나 드러내어야 한다.

반면 국정조사는 굳이 진실에만 매일 이유는 없다. 국정조사의 주된 임무는 판단에 있다. 민주사회의 공직체계는 모든 권력이 합법성과 민주성, 책임성을 구비한 공적 시스템에 의해 이루어지도록 강제한다. 수많은 인력과 엄청난 재정으로 구축된 공적 조직을 통해 대통령이나 재벌과 같은 상층 권력자들의 힘을 견제하고 통제하는 일종의 수직적 권력분립의 체제를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국정조사가 밝혀야 할 것은 이런 시스템의 붕괴 원인과 그 시스템의 복원 가능성이다. 이 광대한 공무원 조직은 무엇이 잘못되었길래 이런 막장의 국정농단이 걸러지지 못했는지, 그래서 이 나라의 법치와 관료제는 도대체 왜 존재했었는지가 명명백백하게 밝혀져야 한다는 것이다. “모른다”, “생각나지 않는다”라는 막무가내식의 국정조사 증인들의 발언이 공조직의 기록과 공적 검증 시스템에 의해 즉각 반박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도 철저히 판명되어야 한다. 대통령과 몇몇 재벌이 무너뜨린 우리의 공적 시스템은 이런 작업을 통하여 비로소 재건될 수 있을 터이다.

탄핵심판의 지향점은 이 모두에 대한 헌법적 평가여야 한다. 탄핵심판이 헌법재판소의 말처럼 ‘대통령의 직을 유지하는 것이 더 이상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거나 대통령이 국민의 신임을 배신하여 국정을 담당할 자격을 상실한 경우’에 해당하는지의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라 한다면, 탄핵소추의결서에 나와 있는 모든 탄핵 사유를 다 조사하고 심사하느라 시간을 끌 이유는 전혀 없다. 행동 하나하나가 잘못된 것인지의 여부를 따지는 형사재판과는 달리, 탄핵심판은 그 사람을 그 자리에 계속 앉혀 놓아도 되는지의 여부를 따지는 것이다. 그러기에 몇 가지 탄핵 사유만으로도 대통령 ‘깜’이 못 된다는 판단이 내려지면 그대로 파면결정을 해도 된다. 오히려 헌법재판소가 집중하여야 할 점은 무너진 공적 시스템을 복원하는 데 필요한 헌법적 가치들을 명확히 제시하는 일이다. 민주공화국과 국민주권 원리의 의미를 제대로 찾아내고 그것이 불통의 정치, 야합의 폭정, 탐욕의 패악을 이겨내는 우리 국민들의 권력 위에 구성된 것임을 재확인하는 일이 그의 주된 임무가 된다.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이 우리들의 신성한 저항권으로 이어지며, 그 헌법의 명령이 우리들의 촛불로 실천되고 있음을 탄핵결정문에 알차게 담아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2년 반이 지나면 1919년 4월11일 상하이임시정부의 임시헌장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라 선언한 지 100주년이 된다. 우리는 한백년의 민주공화국을 찬란한 우리의 미래로 만들어낼 준비를 이미 끝냈다. 그 여정의 8부 능선에서 우리가 일구어낸 탄핵은 그래서 더욱 값지다.

한상희 |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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