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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그라피티 예술가 제프 세인트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매사추세츠주 뉴베드퍼드의 한 건물에 벽화를 그리고 있다. 동료 예술가 라이언 맥피와의 공동 작업인 이 벽화에는 코로나바이러스에 둘러싸여 눈물을 흘리고 있는 눈동자가 그려졌다. 하지만 결국 바이러스가 꽃으로 변해 희망을 선사할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AP연합뉴스

세상 종말을 다룬 영화가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 원인도 가지가지다. 이들 중에서 소행성 충돌이나 외계침공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 재앙의 원인을 제공한 것은 인간 자신이다. 인구급증, 환경오염, 자원고갈, 식량부족, 생태계 변화, 전염병 창궐, 좀비, 문명붕괴 등. 그리고 이런 재앙들은 각각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연쇄반응을 일으킨다. 코로나19 사태도 이런 재앙의 연쇄고리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20세기로 들어오면서 인구증가는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린다. 1900년대 초만 해도 지구의 인구는 20억명을 약간 웃돌았지만 100년이 지난 지금은 77억명이 되었다. 인구가 급증하면서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개발주의는 땅을 점령하고 자원을 소비하며 야생 생태계를 갈아엎었다. 질병생태학자 피터 다작은 워싱턴포스트와 인터뷰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 재앙은 신의 장난이 아니다. 환경에 대해 인간이 도전한 결과이다.” 지구상에는 170만가지 이상의 알려지지 않은 바이러스들이 야생동물을 숙주로 생존하는데, 인간의 개발욕구가 생태계적 경계를 존중하지 않고 침범하는 순간 일부 바이러스가 인간계로 넘어온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그중 하나였다. 

그런데 이건 바이러스만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인구폭발과 끝없는 소비욕구, 지구착취와 환경변화 등 세상종말을 향해 연쇄적으로 움직이는 시곗바늘이다. 인간의 지속 가능성을 갉아먹는 시곗바늘은 지금도 째깍째깍 움직이고 있고, 단계별로 하나씩 새로운 위기상황의 카드를 꺼낸다. 우리가 타고 있는 뗏목을 잘라 연료로 삼으면서도 그 뗏목이 침몰할 수 있다는 걸 모두 모른 척했다. 유엔이 지속가능발전목표를 설정하고, 지구온난화로 북극 빙산이 녹아내렸지만 우리는 그저 남의 일로 여겼다. 적어도 코로나19가 우리를 덮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동안 위험한 줄도 모르고 방치해왔던 위기상황들에 눈떠야 한다. 울리히 벡이 말한 것처럼 우리는 위험사회에 살고 있다. 그 위험은 역설적이게도 성공적인 근대화의 과정에서 인간 스스로 초래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기술적 변화의 산물이다. 한국이 세계 10위권의 산업강국이 되는 과정에서도 매년 산업재해로 거의 1000명의 사망자가 발생한다. 사회경쟁과 스트레스 속에서 국민 4분의 1이 정신질환에 시달리고 있으며, 그중 매년 1만2000여명이 자살한다. 10대 자살자 숫자만도 200명을 넘는다. 학교가 진원지다. 사회가 만든 전염병들 속에서도 ‘물리적 거리 두기’같은 연대와 행동은 보이지 않는다.

이제 터널을 빠져나와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야 하는 세계를 넓고 밝게 바라봐야 한다. 코앞만 보던 시야를 넓혀 조망의 위치로 올라가야 한다. 코로나19 사태로 자동차가 안 팔리고 집값이 떨어지는 현상을 우리는 거꾸로 이해해야 한다. 그게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코로나19는 미친 듯이 소비하고 퍼먹던 자신을 스스로 성찰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몇 주 동안의 칩거가 고통스럽지 않을 수도 있다. 오히려 나를 이해하는 틈새를 선물한다.

나는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우리 삶의 방향이 바뀌어도 좋겠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새로운 사회적 실험들이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다. 불가능하게 보였던 일들이 새로운 희망으로 현실화되고 있다. 생명을 살리기 위해 자본도 멈춰설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가스실’ 뉴델리 하늘색이 달라졌다. 말로만 듣던 기본소득 논의가 본격적으로 실험되고 있다. 재택근무도 나쁘지 않다는 걸 경험하고 있다. 온라인개학이 관습적 학교의 판도를 바꾼다. 원하지 않았지만 새로운 변화가 실현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돌이켜 보면, 2020년 봄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간다.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이긴 교훈을 이제 우리 아이들을 위한 미래의 대한민국을 살리는 데 적용해 본다. 치솟는 확진자 커브의 기울기를 줄이려는 노력을 그대로 파멸로 치닫던 개발주의의 속도를 늦추는 데 적용한다. 속도를 조금만 늦추면 지구를 살릴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다. ‘물리적 거리 두기’라는 작은 결단과 행동이 코로나19를 이기는 힘인 것처럼, 대한민국과 지구의 미래를 살리는 첫걸음도 작은 결단과 행동이다. 

4월15일은 21대 국회의원 선거일이다. 투표라는 작은 결단과 행동을 통해 ‘지구를 살리는 슈퍼맨’이 되어 보자. 관습이나 이익에 따라 투표하지 말고 새로운 미래적 가치를 찾아 투표하자. 위기를 관리하며 먼 항해를 할 수 있는 대한민국. 어떤 정당과 후보가 그곳까지 우리를 데려다줄 수 있을까?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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