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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국회 개원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개원을 앞두고 많은 국민들은 그 어느 때보다 설레고 기대감에 부풀어 있을 것이다. 지난 70여 년간 한국정치에서 한 번도 주류의 자리를 빼앗긴 적 없었던 보수의 벽이 처참하게 무너졌고, 진보와 개혁을 표방하는 세력이 과반을 넘어 압도적 다수를 차지했다. 잘해야 한다. 이제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300석 중 151석. 전체 의원의 절반이 넘는 초선의원들의 역할이 특히 중요하다. 이 중에는 지방의회와 자치단체, 청와대 등에서 정치 수업을 쌓은 사람들도 있지만,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다가 소위 영입인사로 정치에 입문한 신인들도 적지 않다. 이분들께 우선 당부와 부탁을 드리고 싶은 것은, 정치라는 것을 너무 두려워할 필요도 없지만 그것을 너무 얕보아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정치는 여러분들이 각자의 분야에서 타고난 재능과 각고의 노력으로 이룬 탁월성만큼이나 고도의 기예와 경험, 신념과 분투가 필요한 영역이다.

국회는 이 세상의 모든 이해관계가 하나의 도가니 속으로 빨려 들어오는 곳이라서, 말 그대로 천사부터 악마까지 다 만나보기 전에는 출구를 찾을 수 없는 곳이다. 천사라고 믿었던 사람이 악마가 되고, 악마처럼 보였던 사람이 실은 천사인 경우도 허다하다. 선한 초심을 잃지 않거나 정신을 바짝 차리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정치는 그런 것이 아니다.

운동선수들이 오랜 루틴으로 몸을 만들 듯이 정치에도 정치의 근육이 필요하다. 정치 신인들 역시 다른 종목에서는 최고의 선수였을지 몰라도, 정치라는 종목에서는 초짜나 다름없다. 최고의 수영 선수가 최고의 마라톤 선수가 되려면 시간과 경험, 노력이 필요하다. 간혹 탁월한 변호사나 시민운동가가 처음부터 훌륭한 정치인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극히 예외적이다. 자기가 그런 행운을 타고 났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자기도 망치고 나라에도 좋지 않다.

그래서 정치 신인이라면 정치적 전문성을 기르는 것이 필수적이다. 여기서 오해하기 쉬운 것은, 의회에서 다른 선배들에게 좋은 이야기를 듣고, 의회의 공식적 규칙과 비공식적 관행을 열심히 익히며, 소위 공부모임에 열심히 나가서 견문을 넓히는 것으로 이 과제가 해결되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만약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선배가 있다면 믿지 말라. 그 선배는 그것 말고 다른 필수적 역량을 이미 갖추었든지, 아니면 자기도 그렇게 정치를 잘 못 배운 사람이다. 입법이나 제도개혁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인 양 조언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도 믿어서는 안 된다. 정치가 그렇게 간단한 것이라면, 세상이 이렇지 않을 것이다.

오랫동안 재벌개혁에 매진했던 분이 해 준 이야기다. 변호사인 이분은 처음에는 자신이 아는 ‘법’과 ‘사법제도’를 믿었다. 잘못을 고발하고 법정에서 다투었고 번번이 졌다. 다음에는 법이라는 그물이 너무 성기다고 생각했고 ‘입법’과 ‘제도’와 ‘기구’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촘촘하게 법을 만들었고, 감독권을 가진 기구를 강화시킨 안을 포함시켰다. 그러나 정무위나 기재위를 통과하는 데만 수년이 걸렸고, 그렇게 힘들게 진전된 법안은 자유시장 경제를 위협한다는 명분을 내세운 법사위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이런 일은 앞으로도 계속 일어날 것이다. 보수정당이 가진 100개의 의석은 무슨 일을 하지는 못하겠지만, 못하게 하는 데는 충분한 권력이다. 상임위원장 말고 작은 소위원회를 장악하는 것만으로도 입법절차를 지연, 중단시키기에는 충분하다. 당 내에도 생각이 다른 의원들은 얼마든지 있다. 이런 현실에 분개하거나 절차적 개혁을 시도하기에는 이미 늦다. 게다가 의원들이 선호하는 이런 기술적인 해결책은 옳은 대안이 아니다.

모든 초선의원들은 호주머니에 국회법을 넣고 다니며 달달 외워야 한다. 그것은 필수다. 그러나 충분조건은 아니다. 정치는 암기 잘하는 머리가 아니라 부지런한 손과 발이 한다. 자기가 아는 손바닥만 한 세계의 전문성을 내세우지 말고, 모르는 거대한 세계의 삶을 배워야 한다. 정치는 거리에, 내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의 삶 속에 있다. 버스와 지하철, 산업현장, 국방의 최전선에 있다. 그에 비하면 의원들의 공부모임은 사교클럽일 뿐이다. 거기에는 정치가 없다. 정치는 도도한 것이 아니다. 도자기를 구우면서 자기 손에 흙 안 묻히려는 도공이라면 좀 우습지 않은가.

아까 그 변호사 분이 요즘 하는 일은 재벌에 피해를 본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돕고 우리 편으로 만드는 일이다. 그게 제일 빠른 길이라는 걸 30년 걸려 깨달았다고 한다. 21대 초선들을, 응원한다!

<이관후 경남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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