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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10월이면 노벨상 수상자 소식이 전해진다. 올해 50주년을 맞은 노벨 경제학상은 ‘지속 가능한 경제성장’에 대한 업적으로 미국 예일대의 윌리엄 노드하우스 교수와 뉴욕대의 폴 로머 교수가 공동 수상하였다. 노벨위원회는 두 학자가 “거시경제학의 분석대상을 자연과 지식이라는 이 시대가 마주한 두 가지 큰 사안으로 확대하는 데 기여했다”고 설명하였다.

두 수상자의 연구는 경제학이 미처 다루지 않았던 기후변화와 지식을 경제성장이론에 접목시켰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기후변화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노드하우스 교수는 경제와 기후 사이의 국제적 상호작용을 설명하는 정량적 모델을 만들고 탄소세와 같은 기후정책 도입의 이론적 근거를 마련하였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또 다른 수상자인 로머 교수는 경제성장 동력으로 지식과 기술발전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성장 동력을 새롭게 발굴하는 방향을 제시하였다. 로머 교수는 제1차 산업혁명 이후 전 세계에서 장기적 경제성장의 주동력이 되어온 기술진보와 생산성 증가의 경제적 결정요인들을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한 국가의 기술수준과 생산성은 경제여건의 변화에 대한 경제주체들의 선택 결과라는 것이다.

종전의 신고전학파 경제성장이론은 가계부문과 기업부문의 경제적 의사결정의 결과로서 기술진보와 생산성 증가를 설명하지 못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1980년대 중반에 로머 교수가 개발한 성장이론은 경제성장을 경제체제 외부로부터 들어온 힘의 결과물이라고 본 신고전학파의 외생적 경제성장이론과 달리 경제체제의 내생적 결과물임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내생적 성장이론이라 불린다. 즉 장기적 경제성장을 주도해온 기술수준과 생산성의 변화는 외생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경제주체들의 의사결정에 따라 내생적으로 정해진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로머 교수의 내생적 성장이론에 따르면 기술진보는 동일한 자본과 노동을 투입하더라도 종전보다 더 많은 생산을 가능케 하는 지식의 축적을 의미하며, 이는 기업부문의 연구·개발(R&D)에 대한 투자, 가계부문의 교육과 실행학습 등 인적자본 투자의 결과이다. 특히 자본은 투입량이 증가할수록 생산에 추가로 기여하는 한계생산성이 떨어지지만, 지식은 축적될수록 자본과 노동의 생산성을 동시에 향상시킴으로써 장기적으로 한계생산체감의 제약을 제거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지식의 축적은 R&D 투자 및 인적자본 투자와 관련된 정부정책 등 경제여건의 변화에 대한 기업 및 가계부문의 선택이라는 점에서 한 국가의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데 정부의 경제성장 전략이 더욱더 중요해진다.

세계적으로 지속가능성장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 내생적 성장이론은 성장 동력이 고갈되어가고 있는 한국 경제가 앞으로 지향해야 할 길을 제시하고 있어 그 의미가 더욱 크다. 저성장이 지속되고 있는 우리 경제에서는 내생적 성장이론이 실현될 수 있도록 다음과 같은 점에 정책 논의를 집중해야 한다.

먼저 한국 경제가 소득분배를 개선하고 지속가능성장 체제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소득주도성장 정책’만으로는 미흡하다. 공급측면에서 기술진보에 따른 생산성 향상을 추구해야 한다. 특히 소득주도성장 경로에서 노동소득 증대의 투자 및 생산성 증가 효과가 미미하다는 실증분석 결과를 감안하면, 수요 측면에서의 소득주도성장은 공급측면에서의 기술혁신과 생산성 증대가 더해질 때 지속가능성장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기술혁신과 생산성 향상의 구체적 방안은 무엇인가?

첫째, 로머 교수의 R&D 모형에 의하면 장기 경제성장을 가져오는 기술진보율은 연구인력의 증가율과 연구생산성이 높을수록, 기존 지식과 기술수준의 긍정적 파급효과가 클수록 증가한다. 우리나라의 R&D 지출이 절대적으로는 세계 5, 6위이고 GDP 규모를 감안해서는 세계 1위라고 한다. 그런데도 긍정적 파급효과가 큰 첨단·핵심 기술이 충분치 않은 이유는 대기업의 R&D 지출이 주로 개발(D)에 치중해있고 기초적인 연구(R)는 많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 알량한 연구도 본격적인 연구라기보다는 ‘남의 아이디어 다듬기(refinement)’에 불과하다고 한국 경제를 폄하하는 관찰자도 많다. 따라서 경제성장을 촉진하기 위해서 대기업의 R&D 투자는 개발에서 연구로, 남의 아이디어 다듬기에서 본격적인 연구로의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

둘째, 우리나라의 중소기업들은 투자할 신기술은 많은데 자금이 없다. IMF 구제금융 이후 가계로 흘러가지 않은 기업 소득은 주로 대기업의 것이고, 중소기업은 수익률이 대기업의 3분의 1밖에 안된다. 그 주요 이유 중 하나는 대기업의 중소기업에 대한 불공정행위, 특히 납품가 후려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기업이 돈은 많은데 투자할 첨단·핵심기술이 없을 바에야 대기업으로 흐를 돈이 고용의 88%를 담당하고 있는 중소기업부문으로 원활하게 흘러들어가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를 위해 여러 선진국에서 활용되어온 대·중소기업 간 이익공유제 도입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대기업이 중소기업들과 함께 협력하여 상당한 정도의 이익을 얻었다면, 그중 일정 부분은 임직원을 위한 인센티브로 사용하되, 다른 일정 부분은 협력 중소기업의 기술개발 등 장기적인 성장기반 강화에 투자하여 일자리도 창출하면서 동반성장하자는 것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장기적 경제성장의 공급 측 요인인 물적·인적자본 축적과 생산성 향상에 필수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올해 노벨위원회가 인류의 복지에 공헌한 경제학 분야로 인정한 내생적 경제성장이론은 적절한 경제적 유인이 있으면 연구를 통해 더 많은 기술발전이 이루어진다는 기술진보의 내생성을 경제성장이론에 접목한 것이다. 저성장기의 한국 경제가 새로운 동반성장 모델을 만들어 기술진보를 통한 지속적 경제성장이 이루어지기를 희망해 본다.

<정운찬 |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한국야구위원회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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