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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많은 질문으로 가득 차 있다. 정답을 제시하는 영화라기보다는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그래서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도 있고 생각이 엇갈리는 장면도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작하고 정지우 감독이 연출한 영화 ‘4등’이다. ‘해피엔드’와 ‘은교’로 유명한, 그래서 스포츠 인권을 다룬 이 영화 ‘4등’을 연출했다는 게 조금은 의아할 수도 있다. 그러나 원래 ‘사로’(1994), ‘생강’(1996) 같은 독립단편으로 영화를 시작했고, 2005년에 류승완·장진·김동원과 함께 인권위 프로젝트 영화 ‘다섯 개의 시선’에 참여했던, 그리고 그 유명한 ‘해피엔드’나 ‘은교’도 단순한 치정에로물을 넘어 관계의 형성과 파탄의 미묘한 엇갈림을 제시했던, 정지우 감독이다.
그런 까닭에 일차적으로 나의 기대는 이 영화가 운동하는 사람들에 대한 관습적 재현을 넘어서길 바랐다. 가령 드라마 속의 ‘택시 기사’를 연상해 보자. 일반적인 택시 기사가 아니라 드라마에서 ‘재현’되는 택시 기사 말이다. 무뚝뚝하거나 거칠게 과속하거나 기사식당에서 큰 소리로 떠들면서 뜨거운 국밥을 퍼먹는 식으로 재현되는 모습이란, 현실의 단면이 지나치게 과장되어 굳어져버린 진부한 이미지다. 영화의 연출자가 별다른 고뇌 없이 자동반사적으로 재현하는 이미지는,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대한 고정관념을 굳게 한다.
미디어가 판박이로 찍어내는 이미지는 일종의 낙인이 되고 생활 관습의 복제까지 수반한다. 동료에게 상냥하고 손님에게 친절하고 가족에게 부드러운 택시 기사가 현실에서는 많은데, 그러나 ‘택시 기사’라고 할 때, 그런 모습까지 떠올리는 사람은 많지 않다. 게으르게 재현된 이미지가 윤리적인 문제까지 낳을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스포츠를 다룬 영화 속의 인물들도 그렇게 재현되는 수가 많다. 몇몇 영화들, 그 작품 속의 지도자들이 떠오른다. ‘국가대표’의 성동일, ‘우리생애 최고의 순간’의 엄태웅, ‘맨발의 꿈’의 박희순 등 이들은 대체로 복장 상태가 불량하다. 헝클어진 머리칼에 후줄근한 차림으로 등장한다. 수염도 까칠하게 나 있고 성격도 그만큼이나 거칠다. 그런 외모에서 차분하고 자상한 대화나 작전 지시가 나올 리 없다. 하나같이 분노조절 장애가 있는 듯 소리를 지르거나 악을 쓴다. 그런데 속정이 깊다? 인간적이다? 곡절도 많고 사연도 많고, 그래서 ‘감동’의 눈물선을 따라간다?
현실의 다양한 양상들, 수많은 감독들의 스타일들, 저마다의 독특한 개성과 날카로운 직관 등은 이들 영화에서 하나같이 사라진다. 구체적인 작전 지시도 없고 기껏해야 “포기하지 마, 쟤들도 지쳤다고. 우리에겐 내일이 있어” 같은 수준이다. 현실에서 이런 지도자는 거의 없다. 프로축구 제주 유나이티드의 박경훈 전 감독은 카메라가 즐비한 경기장은 물론 연습 중에도 단정하게, 때로는 정장으로, 특별한 날에는 특별한 차림을 한다. 왜? 그는 말한다. “운동하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깨기 위해서.”
다시, 영화 ‘4등’으로 돌아가자. 내일, 선거 있는 날, 이 영화도 개봉한다. 우연의 일치지만 더불어 한두 마디 할 만하다. 이번 총선에서 몇몇 스포츠 인사들이 지역이나 비례로 출마했다. 그런데 아쉽다. 산전수전 다 겪은 그들만의 인품, 승부의 세계를 겪어본 자만 제시할 수 있는 포부, 통합 체육회 출범 이후의 국민 건강과 체육의 미래를 제시하는 정책은 찾아보기 어렵다. 여전히 1등 지상주의, 엘리트 지상주의, 인기 지상주의에 매몰돼 있는 체육인들의 정계 입문이 결정되는 날에 ‘4등’은 여러 겹의 질문을 제시한다.
영화는 1등에 매몰된 지도자와 부모와 아이가 저마다의 입장에서 어떻게 폭력에 노출되고 그것을 재생산하는가를 보여준다. 비록 후줄근한 옷차림에 우선 화부터 내는 고정된 이미지의 재현이 눈에 먼저 보이지만, 정지우 감독은 스포츠와 인권, 그러니까 이 두 용어 사이를 건널 수 없는 강처럼 가로지르는 폭력의 발생과 재생산의 심리적 메커니즘을 추적한다. 표면적으로 그것은 ‘운동하는 학생이 1등이 안되면 그 무엇도 안되는 현실’을 담는다. 그러나 이 영화는 자기부정과 자기인정 사이에서 극도로 혼란에 빠지는 지도자와 아이에게 전 생애를 투사해 아이의 경기 결과가 곧 자기 삶의 결산표가 되는 부모, 그리고 그런 상황 속에서 저도 모르게 동생을 ‘엎드려뻗쳐’ 시켜놓고 태연스럽게 폭력을 재생산하는 아이를, 그들 각자의 사정과 심정과 관점을, 그 해답 없는 질문들을 제시한다.
영화를 보고 나면, 스포츠 폭력의 구조적 원인을 아이 엄마에게 뒤집어씌우는 게 아닌가, 자기의 잘못을 부모에게 전가하는 지도자의 해명이나 변명은 왜 당당한가, 제목은 ‘4등’인데 왜 아이가 1등을 하는 것으로 영화가 끝나는가 등에 대해 거듭 생각을 하게 한다.
정지우 감독은, ‘해피엔드’나 ‘은교’에서도 정답을 제시하기보다는 그렇게 쓴 답안지를 일부러 지우면서 다른 답안은 없는가 하고 카메라를 익숙한 프레임 바깥으로 돌리곤 했는데, 이 스포츠 인권 영화 ‘4등’에서도 그렇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익숙한 정답에 멈추지 않고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과연 폭력은 어떻게 정당화되고 재생산되는가? 스포츠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의 역행 현상에 대해 영화 ‘4등’은 익숙한 정답 대신 다양한 오답을 찾아보자고 권한다.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한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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