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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국가 의식 없앤 프로축구장
혼탁 현상 빚어졌다는 말 없어
‘스트레칭’ 논란 퇴출된 선수에
인종차별적 비난 생각해봐야”
1990년대 중반의 일이다. 그 무렵 나는 영화평론가 김정룡씨와 축구 구경을 하러 갔다. 전광판 하나라도 역사적 기념비로 남겨놓기를 바랐으나 그 흔적도 이름도 말끔히 사라진 동대문운동장에 갔다. 김정룡씨는 주변 사람들에게 부드럽고 함께 일하는 동료와 학교 제자들에게 더없이 따사로운 사람이었으나 세상의 불의에 대해, 특히 문화예술계의 비린내 나는 위계와 상업주의에 치를 떨며 거침없이 평론했던 하드보일드 강자였다. 그가 얼마나 강자냐 하면, 에잇 혼탁한 세상에 이까짓 평론 하나가 무어냐 하며 어느 순간 절필하더니 영화계, 문화계에 발걸음을 딱 끊어버리고는 소리소문 없이 사라질 정도였다. 지금도 안부가 궁금하다.
하여간 이 열혈남아 비평가와 축구를 보러 갔는데, 경기 전에 의식이 진행되었다. 팡파르에 맞춰 양팀 선수들이 입장하고 또 애국가가 울려퍼졌다. 당시 풍습대로 많은 사람들이 일어섰고 나도 엉거주춤 일어섰다. 그러자 김정룡씨는 스탠드에 그대로 앉은 채로 말했다.
“도대체 뭐하는 거야, 무슨 쌍팔년도도 아니고, 축구 하러 와서 뭐하는 거야.”
나는 그때 어떻게 대답했던가. 물론 당신의 지적은 맞다, 프로스포츠 경기마다 애국가를 틀고 선수와 관중이 일동 기립하는 것은 저 군사독재 시절의 잔재다, 그러나 지금 내가 일어서는 것은 저 선수들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이다, 애국가를 포함하여 지나치게 형식적인 의식을 조절하는 것은 축구협회 프로구단들이 선결해야 하는 것이고 지금 저 선수들은 어쨌든 정해진 절차에 따라 의식을 치르고 있지 않은가, 저 선수들을 위하여 나는 지금 일어서 있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대답하지는 못했다. 애국가 의식이 끝난 후 곧장 경기가 진행되었기 때문에 이 같은 주장을 피력할 틈이 없었고 이후 김정룡씨는 군더더기 하나 남기지 않고 환멸의 영화계를 떠나버렸기 때문에 뭐라고 덧붙일 기회가 사라졌다.
옛날에는 영화 보러 가면, 모두 일어서서 애국가도 들어야 했고 10분짜리 대한뉴스도 봐야 했다. 그게 1989년에 사라졌다. 명쾌한 일이다. 영화 보러 갔으면 영화를 보면 된다. 경기장에 갔으면 경기를 보면 된다. 국가대항전이라면 모르겠으나 왜 애국가 의식을 치르는가? 그래서 2006년부터 프로축구 K리그에서 상당수 구단들이 애국가 의식을 중단했다.
이와 관련하여 기억할 만한 사건이 있다. 2002년 지네딘 지단이 치른 ‘장외 경기’다. 그해 봄, 프랑스는 대통령 선거를 치르고 있었다. 극우정당 ‘국민전선’의 장 마리 르펜은 극단적인 인종혐오 발언을 쏟아내며 결선투표까지 올라갔다. 특히 그는 다인종으로 구성된 프랑스 축구 대표팀을 힐난했다. “‘라 마르세예즈’도 부르지 못하는 흑인 녀석들이 무슨 프랑스 대표란 말인가?”
알제리계 이민자의 아들, 지단은 르펜에 대해 강력히 저항했다. 지단의 ‘장외 투쟁’ 효과 덕분인지 그 후 르펜의 인기는 사그라들었고 시라크가 당선됐다.
그런데 지단을 비롯한 수많은 자유주의 사상가, 예술가, 축구 선수 등의 인종차별 반대 열기에 힘입어 당선된 시라크는 그해 5월11일 열린 프랑스컵 결승전에서 그들의 애국가, 즉 ‘라 마르세예즈’를 둘러싸고 큰 소동을 일으켰다. 남프랑스 브르타뉴를 연고로 하는 로리앙과 코르시카 섬을 연고로 하는 바스티아가 맞붙었는데, 경기 전 바스티아의 서포터스들이 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예즈’가 연주되자 함성과 야유를 쏟아낸 것이다. 이 섬은 1768년 프랑스가 이탈리아로부터 빼앗은 이후 오랜 세월 동안 프랑스의 식민지로 굳어진 곳이다. 거칠고 실험적인 영화 <예언자>에 이 섬의 비극적인 역사가 묻어 있다.
그런 역사를 가진 축구팬들에게 ‘라 마르세예즈’는 강압적인 제국 시절의 프랑스 인종주의와 패권주의를 상징하는 노래로 들렸을 것이다. 당시 시라크 대통령은 축구협회장과 양팀 관계자에게 거칠게 항의하며 잠시 퇴장까지 했다. 바스티아 단장이 정중히 사과를 하는 등 급히 수습하여 경기는 20여분 뒤 시작되었다.
그런 소동을 전후로 하여 과연 다인종으로 구성된 프랑스 선수들이 ‘라 마르세예즈’를 제대로 부를 줄이나 아는가 하는 의견이 개진되기도 했다. 2002 한·일 월드컵 조별리그 마지막 덴마크전을 보면 라자라쥐, 튀랑, 뒤가리 등이 ‘라 마르세예즈’를 따라 불렀고 바르테즈, 비에이라, 트레제게 등은 입을 굳게 다물었으며 지단은 부르는 듯 마는 듯 했다. 물론 입을 벌리고 따라 부르느냐 아니면 굳게 다물고 있느냐가 애국심의 리트머스 용지는 결코 아니다. 우리 선수들도 애국가가 흐를 때 눈을 지그시 감고 입을 굳게 다무는 경우가 많다.
프로농구 LG의 데이본 제퍼슨이 ‘애국가 스트레칭’ 논란 끝에 퇴출됐다. 제퍼슨은 “내가 왜 KBL을 떠나야 하나, 이유를 알려달라”고 항변하였고 LG 관계자가 힘겹게 설명했다고 한다. 애국가 스트레칭뿐만 아니라, 스스로도 납득할 만한 사안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렇기는 해도, 제퍼슨의 행동과 무관하게, 왜 프로스포츠에서 애국가 의식을 치르는가에 대해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국가대항전, 올스타전, 포스트시즌 같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굳이 존속할 필요가 있을까. 오래전에 이를 없앤 프로축구장에서 애국심이 실종되었다든지 야생적인 혼탁 양상이 빚어진다는 보고도 전혀 없다. 비단 과거 권위주의적 절차라서가 아니다. 거의 모든 종목에 수많은 외국인 선수들이 함께 뛰고 있다.
이번 ‘제퍼슨 파문’ 때 일부 언론과 인터넷에서는 ‘흑인 용병’이니 ‘돈만 안다’느니 ‘한국에 왔으면 한국인의 정서를 존중하라’는 식의 인종차별적인 용어와 야만적인 의식이 아무렇지도 않게 전개되었다. ‘애국가’ 도중에 잠깐 스트레칭을 했던 제퍼슨보다 훨씬 저열한 비난이었다. 구단은, 제퍼슨을 퇴출하더라도, 이 같은 일그러진 비난을 조장하거나 묵인하기 전에 국내에서 뛰고 있는 수많은 외국인 선수의 인권과 수준 높은 프로스포츠 문화 또한 고려했어야 한다. 만일 퇴출시킬 만한 ‘건수’로 활용했다면 이는 진정한 프로가 아니다.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한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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