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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지명했다. 현 정부의 헌법재판관과 대법관에 대한 인사 정책이 파당적이라며 비판하는 견해와 헌재 구성의 다양성이라는 관점에서 긍정적이라는 견해가 맞서고 있다. 앞으로 있을 청문회에서 한바탕 설전이 벌어질 것이다. 아무려나 현 정부의 인사 패턴을 보면 이들이 재판관으로 임명될 것은 거의 확실하다.

훌륭한 판관을 뽑기는 쉽지 않다. 법률가로서의 자격이나 경력 요건 외에 판관 될 사람이 갖추어야 할 자질에 관해서 법이 별도로 정한 바도 없다. 이 풍진 세상, 고위직 판관을 뽑는 데 기준으로 삼을 만한 자질은 무엇일까. 임명권자로서는 아무래도 자기 편을 들어줄 것 같은 사람이 필요할 게고, 또 성별이나 출신지역 안배도 생각해야 할 것이지만, 이런 고려사항이 일단 판관의 자리에 오른 이가 가져야 할 자세와 반드시 같지는 않다.

판관의 자질에 관하여는 고래로부터 논의가 적지 않다. 그중 눈에 띄는 것을 소개하자면 19세기 영국의 대법관이었던 존 싱글턴 코플리가 한 말이 있다. “(법관직에 뽑을 사람으로) 내가 찾는 것은 신사다. 법률을 조금이라도 알면 더 좋고.” 이것 말고도 논자들이 공통적으로 꼽는 몇 가지 자질은 용기, 정직, 근면이다. 

제일의 조건이 신사여야 한다는 이유는 뭘까. 신사란 우리 식으로 말해 선비쯤 되는 개념이 아닌가 싶은데, 요컨대 먼저 사람됨을 보자는 것이다. 코플리의 발언에 대한 해설을 보면 신사란 고결함과 공손함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니, 달리 말해 비루하거나 야비하거나 치사한 성품의 소유자는 판관으로 삼을 일이 아니다. 이번에 후보자로 지명된 이 중 한 사람이 여성이니, 여성의 경우엔 숙녀만이 판관으로 적합하다고 해야 하겠다.

그다음은 요구사항이라기보다 희망사항쯤 된다. 그런데 “법률을 조금이라도 알면 더 좋고”라니, 어째 좀 이상하지 않은가. 코플리는 판사를 뽑는 권한을 가졌던 사람이다. 고위직 판관의 법률 실력이 수월한지 아닌지를 놓고 여러 말을 하지만, 그는 그런 수월함이 능사가 아니라고 보았던 것 같다. 왜였을까. 법률직의 전문성이 가지는 어떤 함정을 알게 되면, 그 말투의 심상함이 담고 있는 의미가 다가온다. 법이란 얼핏 아주 정치한 체계 같아 보이지만 실인즉 구체적 쟁송에 들어가면 딱 들어맞는 법규정은 물론이고 선례도 찾기 어려운 게 다반사다. 분쟁이란 결국 이해관계를 놓고 벌이는 다툼인데, 판관의 관점에서 볼 때 이는 대립하는 정책적 고려사항 중 어느 것을 택해야 할지의 문제다. 바로 이때 양심이니 가치관이니 하는 것이 작동한다. 그러니 전문성이 아니라 신사의 자질이 최우선이라는 것이 코플리 발언의 참뜻일 게다.

셋째로, 용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용기는 사법권 독립을 지키기 위해 필요하다. 겁이 없어야 한다는 것인데, 기대하기가 만만치 않다. 과거 헌재의 한 재판관은 행정수도 이전에 관한 헌법소원사건에서 주심을 맡아 위헌결정을 냈다. 당시의 정권이 곱게 보았을 리가 없다. 오비이락인지 아닌지 모를 일이나, 그는 다음해 임대소득의 세금탈루 의혹 보도에 곤욕을 치르고 결국 사퇴하였다. 신상의 불이익 따위에 겁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넷째는 정직의 덕목이다. 사법사상 판관이 부패했던 이야기를 하자면 한이 없다. 하지만 실제로 중요한 것은 지적 정직성이다. 모르면서 재판하지 말라는 것인데, 다 알고 재판하자면 집에 기록 보따리 싸 가지고 가는 것은 일상사고, 칼퇴근한다는 것은 어림도 없으며, 주말에 일하는 것도 피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부지런해야 한다는 것이다. 게으르면 판관 노릇 하기 어렵다. 몸이 약해도 곤란하다. 살인적 업무량에 몇 해를 뼈가 녹도록 일하다 보면 몸이 견뎌내지 못한다. 

그러나 저러나 정치적 성향은 제치고라도, 법조계에서 보통의 양식을 가진 사람들의 입장은 대략 이번의 지명이 다소 지나치다고 보는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즉 새 정부 집권 초기에는 그렇다 쳐도, 이제는 균형 잡힌 인사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은데 별다른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이번 인사 발표에서 청와대가 강조한 헌재 구성의 다양성 추구는 그나마 긍정적이지만, 다양성을 추구한다 하면서도 객관적으로 보아 정치적 고려가 주된 기준이었던 티가 난다. 지명된 후보자의 자질이 의심스럽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간 지명된 사람의 대다수가 특정 단체 출신이라는 점이 의아스럽다는 것이다.

물론 헌재의 인선에서 국정철학을 관철하려는 것은, 헌법이 헌재 구성의 구도에서 대통령·국회·대법원장이 각자의 몫대로 지명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으니 이해하지 못할 바 아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이들이 훌륭한 헌법재판관으로 봉직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을 듯하다. 그러나 일단 임명되면 헌법재판관의 임무는 오로지 양심에 따라 헌법적으로 판단하는 데 있다. 후보자들이 신사이며 숙녀라면 큰 탈이 없지 않을까. 

그런데 양심이라는, 헌법 조항에 나와 있는 낱말을 인용하다 보니 한마디 꼭 덧붙이고 싶다. 혹시라도 양심을 이른바 ‘정무적 판단’이라는 아리송하고 위험천만한 기준으로 이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너무 ‘정무적’이다가 그만 법대 아래에서 재판받는 신세가 되고 심지어 쇠고랑까지 찬 고위직 법관들을 이미 여럿 보고 있지 않은가. 그 재미없는 희극에 어이없어 하는 마음에서 이 고언을 드린다.

<정인진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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