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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사람이었다!’ 말할 수 있는 세상을 같이 만듭시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명애 상임공동대표의 말이다. “옷에 흙을 묻히더라도 세상 밖으로 기어 나오지 못한” 시간이 한스럽다며 발언 때마다 집에서만 보낸 47년의 시간을 회상한다. 나도 사람이다가 아니라 ‘나도 사람이었다’는 표현이 인상적인데, 47년의 시간에 대해 스스로 존엄함을 부여하는 게 아닐까 짐작해 본다. 현재의 투쟁에 몸을 던지는 그의 시간은 언제나 47년과 지금을 오가고 있는 것만 같다. 장애인 살기 좋아지지 않았냐는 훈수 따위는 끼어들 틈이 없다. 50년에서 3년 모자란 긴 세월인데 현재의 분노와 만나는 회상은 언제나 생생하다. 흙은 오체투지로 몸이 바닥에 닿아 묻기도 하고, 정부의 무대책, 무심한 시민의 편견 한마디에 묻기도 했을 거다. 몸에 흙을 묻힌 수많은 이들 덕에 세상은 방 안에 있어야 했던 47년의 시간을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나를 장애인 운동으로 이끈 건 자원활동 중이던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일어난 죽음에 대한 소문이었다. 사인을 정확히 밝히지 않고 화장했다는 소문에 문제를 제기하는 편과 침묵하는 다른 편이 있었다. 둘 간의 차이를 오래 고민하였는데, 결국 침묵에 동의하긴 어렵다는 결론에 닿았다. 묻고, 싸우고 싶었지만 나눌 동료가 없고 방법을 몰랐던 나는 죄책감, 분노, 원망 같은 것이 뒤섞인 속마음을 꽤 오래 감추고 자원활동에 참여했다. 그 시간에 대한 부끄러움은 장애여성 운동, 장애인 탈시설·거주시설 폐쇄 운동과 만나면서 해야 할 일들로 바뀌게 되었다.
오래전 노들장애인야학에서 학생으로 활동하던 이의 3년 전 추모식도 떠오른다. 추모식에는 그가 남긴 한글을 익히던 시절의 노트도 놓여 있었다. 15년 전 나와 연습한 한글 노트였다. 묘한 감정이 일며 그와 겪었던 갈등들이 상세히 기억났다. 그가 과제를 안 해 왔을 때, 나와 자기결정권을 두고 다퉜을 때, 수업과 집회 참여를 두고 토론했을 때 등. 기억을 더듬어보니 사이가 안 좋았던 순간이 더 많았다. 그는 평범하게 살았고 그저 궁금한 것을 물었을 테지만, 장애인과의 갈등은 나에겐 낯선 것이었다. 장애인과 평등한 관계를 맺는 것이 무엇인지 물음만 있고 답이 없던 시간. 얽히고 묶이며 겪어내야 했던 시간과 관계만이 이정표가 되었던 시간, 우리가 채워간 건 한글 노트가 아니라 오답 노트였을지 모른다.
작년 신길역 지하철 리프트 사망사고에 대한 책임을 서울시에 물으며 지하철 연착 시위를 할 때였다. 지지해주는 시민들 사이에서 ‘바쁜데 왜 나와서 방해하냐’ 고함이 터져 나왔다. 이제는 쉽게 볼 수 있는 지하철 엘리베이터이지만 처음에 만들던 과정은 투쟁의 연속이었다. 2002년 장애인이동권 확보를 위한 지하철 연착 시위 때도 비슷한 고함을 들었다. 이럴 때면 시간이 거슬러 가는 것만 같다. 장애인의 시간도 귀하다. 그 귀중한 시간을 자신의 존엄을 위해 쓰고 있다. 3월26일 세종시에서 ‘장애인거주시설폐쇄법’ 제정을 촉구하는 420장애인차별철폐투쟁 주간이 시작되었다. 느리고 할 일 없을 거란 세상의 편견을 비웃듯, 4월 싸우는 장애인들은 제일 바쁜 사람들이다. 4월 거리에 나선 장애인의 시간은 그들이 살아온 그리고 살아갈 수많은 시간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세상이 장애인이 살아온 시간을 보고 들으며, 장애인이 살아갈 시간에 대한 책임과 마주해야 한다.
<이진희 장애여성공감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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