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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과연 초시대를 살고 있는가, 우리 사회는 초연결 사회가 될까.

요즘 TV광고들을 보면 쉴 새 없이 말한다. “가고 싶은 어디라도 갈 수 있고, 보고 싶은 무엇이든 볼 수 있다”, “세상을 내 마음껏 가지고 노는 능력,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당신의 초능력”…. 또 다른 광고는 지금을 “4차 산업혁명 시대도 아니고, 5G 시대도 아닌 초(超)의 시대”라고 명명한다. “모두의 생활 곳곳을 바꿀 거대한 변화”가 온다는 것이다. 인간과 인간, 인간과 기계에 이어 기계와 기계까지 서로 소통하며 완전하게 연결되는 꿈의 세상.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즐겁게 전한다.

오는 5일 한국에서 세계 최초로 상용화 서비스를 시작하는 ‘5G(5세대 이동통신)’를 앞두고 이동통신사들이 경쟁적으로 하고 있는 광고들이다.

여기엔 초융합, 초연결, 초지능, 초능력 등이 일상어처럼 나온다. 몇 초 만에 사람의 마음을 빼앗아야 하는 광고의 특성상 화려하게 포장된 것을 알고 있지만 한참을 듣다보면 마치 나에게 그런 초능력이 생길 것 같고, 우리가 빛의 속도로 빈틈없이 연결될 것이라는 착각마저 든다. 그러나 초시대, 초연결에는 누구 하나, 어느 한 곳 빠짐없이 누려야 할 것을 함께 누린다는 전제가 깔려 있어야 한다. 이들 광고가 현란하면 현란할수록 현실에서의 차별, 혐오, 소외, 빈부격차 등이 더 크게 다가와 공허하게만 느껴진다.

특히나 우리 사회에서 삶의 격차를 마지막으로 증명하는 쓸쓸한 죽음과 마주할 때 더욱 그렇다. 

지난달 서울의 한 빌라에서 30대 독거 장애인이 숨진 채 발견됐다는 안타까운 사연이 또 들렸다. 정확한 사망 시점을 추정할 수 없을 만큼 시간이 너무도 많이 흐른 뒤 그의 죽음은 비로소 세상에 알려졌다. 38세 남성인 그는 기초수급대상자로 정신장애를 앓고 있었지만 40세 미만이었기에 지방자치단체의 정기적인 모니터링 대상에선 빠져 있었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 서울의 한 다세대주택 반지하 방에서 난 불로 홀로 살던 70대 장애인이 숨지기도 했다.

죽음의 직접적인 원인이 가난일 때 우리는 더 큰 무력감을 느낀다. 지난 2월은 가난했지만 선량하게 살다간 송파 세 모녀의 5주기였다. 크고 작은 추모식이 열리고 5년 전 일었던 비판과 성찰이 되새김질 됐다. 하지만 지난 5년간 우리 사회가 크게 달라졌다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우리 삶의 연결망은 아직도 엉성하기만 하다. 

테크놀로지는 초능력, 초연결 시대를 노래한다. 하지만 실제 우리는 초격차 사회의 수렁으로 점점 빠져들고 있다. 이 같은 괴리는 마치 잘 만들어진 공포 영화가 주는 비현실적인 공포와 흡사하다. 주말에 본 영화 조던 필 감독의 <어스(Us)>는 미국 소재의 영화였지만 우리의 모습을 엿보게 하며 묘한 공포감을 불러일으켰다.

영화에서 해변가로 휴가 온 일가족을 공격하는 이들은 다름 아닌 가족을 닮은 사람들(도플갱어)이었다. 이들은 고백한다. 육체는 두 개였지만 영혼을 나누어 사는 “나는 너의 그림자”였다고. 똑같은 육체(인간)를 갖고 있다지만 안온한 지상 위의 삶과 차디찬 아래의 삶은 완전 딴판일 수밖에 없다. 쫓고 쫓기는 잔인한 피의 싸움이 끝난 후 영화 마지막에 이르러 ‘나와 너’의 관계는 모호해지며 ‘나와 타자’의 정체성을 고민하게 만든다.

1986년과 현재 시점을 배경으로 한 영화에는 1986년 당시 미국에서 있었던 퍼포먼스 ‘핸즈 어크로스 아메리카’가 나온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기금 마련 캠페인의 하나로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서로 손을 맞잡아 하나로 연결하는 퍼포먼스였다. 영화에서 붉은 옷을 입은 수많은 도플갱어들이 기괴한 방식으로 세상 밖으로 나와 거대한 인간띠를 이루는 모습에선 공포 대신 연민이 느껴진다. 공포 스릴러를 내건 영화가 끝난 후 어두운 극장을 빠져나오는 발걸음이 무거운 것도 이 때문이었다.

스마트한 5G 시대는 분명 이제껏 없던 세상의 풍경들을 만들 것이다. 먼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사람의 심장박동까지 마치 곁에 있는 것처럼 초단위로 들려줄 것이다. 인간의 마음을 알아챈 기계들이 나서서 온갖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테크놀로지가 초연결 사회를 만들어준다고 해도 내 주위에 불평등과 소외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무늬만 있는 초연결이 아닐까. 얼마 전 달성한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가 상대적 빈곤의 깊은 골을 드러낸 자화상이었듯이.

진정한 초연결 시대는 영화에서처럼 동등한 존재로 손을 맞잡을 때 열리지 않을까.

<김희연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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