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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경기장은 로마의 영광과 질병을 동시에 드러내는 징후다.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수도 로마의 콜로세움이며, 비운의 폼페이에도 거대한 원형경기장이 남아 있다. 여흥과 오락의 장소인 그곳에서는 연극이 상연되기도 했고, 전차경주가 벌어지기도 했다. 기독교가 박해받던 시절에는 기독교인의 처형장이기도 했지만, 원형경기장은 무엇보다도 검투사 시합을 연상케 한다. 주로 포로나 노예가 동원된 검투사 시합은 민중을 열광시켰기에, 정치가의 선전을 위한 이벤트로 변질되기도 했다. 카이사르도 대규모 시합을 열었고, 로마 근교의 광장에 연못을 만들고 군함을 띄워 모의해전을 개최하기도 했다. 검투사 스파르타쿠스의 봉기에서 반란군들은 반대로 로마병 포로에게 검투사 시합을 강요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를 두고 어느 역사학자는 “이제껏 볼거리 취급을 당했던 이들이 이제는 관객이 되었다”고 기술했다. 기독교의 영향으로 원형경기장은 점차 폐쇄되었고 최고의 오락거리인 검투사 시합은 마침내 공식적으로 금지되고 소멸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프로스포츠는 철저히 규칙화되고 안전이 보장된 현대판 검투사 시합이다. 문명은 피비린내 나는 살육의 제전을 건전하고 신사적인 스포츠로 승화시켰다. 그런데 프로스포츠의 세계와 다른 차원에서 여전히 검투사 시합이 펼쳐지는 현대판 원형경기장이 존재한다. 인터넷에 접속할 때 가장 먼저 찾는 포털은 우리를 검색어 순위로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세상사에 심드렁한 도인이 아니라면 순위에 오른 이름들을 무심히 누르게 된다. 그 이름들은 자주 사건, 사고와 연루되어 있고, 우리는 클릭과 함께 그들이 피를 흘리며 싸우는 원형경기장에 입장한다.

범죄의 혐의나 추문의 진위가 논란이 된다. 관심이 고조되고, 소셜미디어에서 격론이 벌어진다. 보도가 쏟아지고, 당사자는 입장을 표명한다. 더러는 고발을 당하고, 더러는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반격에 나선다. 수사기관이 개입하고, 영장이 청구되며, 정치인이 가세한다. 당사자들이 사활을 걸고 싸우는 이 과정은 어이없는 해프닝으로 끝나기도 하고, 본격적인 사법절차로 이어지기도 한다. 며칠이 멀다 하고 새로운 사건이 비슷한 패턴으로 되풀이된다. 이 시합들은 우리가 일용하는 양식이고, 우리의 불안과 선망과 분노와 공포가 투사된다. 패배한 사람들은 직업세계에서 퇴출되고, 불명예를 당한다. 자유를 잃고 감옥에 가는 경우도 드물지 않고, 극단적인 경우에는 목숨을 버린다. 스포츠와 달리 실제로 살고 죽는 진정한 검투사 시합이기에 시민들은 경멸하면서도 빠져든다.

로마의 자유민 중에 돈과 명성을 좇아 스스로 검투사가 된 사람들이 있듯, 현대판 원형경기장에도 자발적으로 뛰어드는 사람들이 있다. 인지도는 돈과 명예와 권력으로 변환될 수 있는 일종의 화폐다. 그 화폐를 모으기 위해 많은 이들이 상상력을 발휘한다. 자신에 대한 극심한 혐오를 불러일으켜 인지도를 높이고, 그 인지도를 돈과 권력으로 바꾸는 전략을 구사하는 사람마저 있다. 이들은 누가 내몰지 않아도 스스로 칼을 들고 경기장에 나타난다. 그리고 자신이 시합을 벌이고 싶은 사람을 자극적인 방법으로 불러낸다. 대중의 지지를 돈이나 권력으로 변환해야 하는 연예인이나 정치인은 언제든지 자의든 타의든 원형경기장에 나설 각오를 해야 한다. 대중의 관심이 생명인 정치인들은 각자의 무예를 선보이느라 여념이 없다. 그들은 스스로 나선 검투사로서 연예인보다 더 연예인다워야 생존한다. 반대로 연예인은 정치인보다 더 정치인다워야 살아남는다. 정직해야 하고, 선행을 해야 하며, 자신과 무관한 가족의 빚조차 말끔히 해결해야 한다. 언행일치의 높은 윤리를 갖추지 못하면, 순식간에 버려진다. 정치는 연예화되고, 연예는 정치화된다. 

네트워크와 접속된 민주주의는 소수가 정보와 권력을 독점하고 관리했던 시대보다 분명히 나아졌다. 언론에 의해 부당하게 명예를 훼손당하거나 국가에 의해 억울한 일을 당한 수많은 사람들이 조용히 스러지던 시대가 있었다. 음습한 범죄가 돈과 권력의 비호 아래 횡행하기도 했다. 그에 비하면 이 시대는 상대적으로 공정하고 열린 시대다. 그런데, 언론과 지식인과 국가의 역할이 쇠퇴하면서 생긴 빈자리를 자발적인 검투사들, 관전하며 훈수를 두는 수많은 개인 그리고 클릭 수에 목마르고 덜 진지한 매체들이 채우고 있다. 민주주의가 만개할 줄 알았던 광장이 반지성주의로 점철된 원형경기장으로 변모하고 있다. 국민의 알 권리에 크게 기여한 인사청문회조차 검투사 시합처럼 치러진다. 이것은 이 시대가 앓는 어떤 질병의 징후다. 아니, 마오쩌둥은 어디에서인가 이렇게 말했다. “역사는 증상이고, 우리가 질병이다.” 아니면 말고 식의 터무니없는 공격과 거짓 변명으로 어수선한 이 시대의 원형경기장은 과연 괜찮은가. 모든 시민이 언제 어디서나 작은 크기의 세로로 긴 사각형과 큰 크기의 가로로 긴 사각형 모양의 단말기를 통해 원형경기장에 입장하는 이 시대는 이대로 흘러가도 좋은 것일까.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인간의 야수성이 온라인 원형경기장에 표출되는 것에는 불가피한 부분이 있다. 그러나 공동체의 중요한 의제나 무고한 이들의 운명마저 검투사 시합처럼 다루어져서는 안된다. 민주주의는 소란스러운 것이지만, 이대로 초연결사회로 나아간다면 미래는 비관적이다. 원형경기장을 보다 인간화하기 위한 문화적 변화와 새로운 제도적 설계가 절실하다. 프라이버시와 명예가 어떤 경우에 포기되고, 어떤 경우에 강력하게 보호되어야 하는지, 확증편향과 은밀한 조작에도 불구하고 논쟁과 증명이 어떻게 생산적으로 진행될 수 있는지에 관한 연구와 시스템의 보완이 필요하다.

원형경기장이 없는 지루한 사회는 반대한다. 그러나 죄 없는 사람마저 강제로 끌려나와 맹수의 밥이 되어서야 되겠는가. 난투극에 최적화된 자발적 검투사에 의해 사회의 중요한 의제가 줄곧 표류하고 실종되는 것은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조광희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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