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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는 획기적인 발명이었다. 얼마나 신기했으면 원거리(tele)에서 들리는 소리(phone)라는 뜻에서 텔레폰(telephone)이라 불렀겠는가. 1876년 알렉산더 벨이 세계 최초로 특허를 받은 전화는 세계인의 일상을 바꾸었고 최근 40년 동안 놀랍도록 변화했다. 그 변화의 중심에 무선전화의 등장이 있다. 

북유럽에서는 사람이 많지 않은 곳까지 유선전화를 설치하는 것이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에 일찍부터 무선전화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1980년대 무선 휴대전화가 등장했다. 처음에는 카폰에 이용되었는데 벽돌 모양처럼 큰 형태여서 불편했지만, 부의 상징처럼 인식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1993년 IBM에서 최초의 스마트폰 ‘사이먼(Simon)’을 선보이면서 무선전화에 혁신이 일어났다. 무선 휴대전화는 다목적 컴퓨터 장치를 탑재해 멀티미디어 기능을 가진 스마트폰으로 진화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오늘날의 스마트폰은 초기 스마트폰의 한계를 극복하고 개방된 기술 경쟁과 융·복합을 통해 최첨단 기술제품으로 등장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는 비즈니스 환경에서 내부 자원만으로 혁신을 지속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현대경제 환경의 변화는 빠르고 광범위하다. 기업도 개방을 통한 혁신을 하지 않고서는 이 파고에 좌초하기 십상이다. 글로벌 기업들은 1990년대까지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제품화하지 못한 채 사장시켰던 실패 경험을 거울 삼아 지금 외부 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개방형 혁신을 새로운 경영 패러다임으로 장착하고 있다. 만약 개방형 혁신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전화기가 유선에서 무선으로, 나아가 스마트폰으로 발전하는 혁신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캘리포니아(버클리)대 체스브로 교수는 저서 <개방형 혁신>(2003년)에서 폐쇄적 생산구조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개방형 혁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는 기업이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 아이디어와 연구·개발 자원을 함께 활용해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혁신 이론이다. 이 책에서 그는 IBM이 과거 ‘폐쇄형 혁신(Closed Innovation)’을 추구했으나, 2000년대 초반부터 기업 내부와 외부의 집단지성을 활용해 문제를 해결하거나 새로운 혁신을 만들었다며 그 예로 들고 있다.

종전에는 기업들이 기업 내부에 최고의 인재를 모아 연구·개발과 판로까지 결정하고 좋은 아이디어를 제품화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경쟁의 심화, 이노베이션의 불확실성, 연구·개발비의 급증, 단기적 성과 요구 등으로 인해 이러한 방식으로는 더 이상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개방형 혁신이 필요한 이유다. 체스브로 교수는 외부의 기술이나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제품을 만들고 이를 통해 새로운 시장을 만들 때 지속적인 경쟁력 유지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개방형 혁신>에 이어 <개방형 비즈니스 모델>(2006년), <개방형 서비스 혁신>(2011년) 등 일련의 저서를 통해 제조업은 물론 다양한 분야에도 개방형 혁신이 적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우리나라의 경우를 살펴보자. 최근까지도 일부 대기업은 혁신이나 품질 개선을 위한 노력보다는 가격을 낮추어 경쟁력을 높이는 전략에 치중했다. 결과적으로 기업생태계가 수직적인 분업 관계에 머물게 되었다. 이처럼 수직관계가 형성되면서 협력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지시나 요구에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형태로 자리 잡게 되었고, 전속거래라는 폐쇄적 구조가 고착되었다. 이런 구조에서 혁신을 기대하긴 어렵다.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협력 중소기업에 고통을 전담시키는 이른바 수직적인 분업 관계에 의한 가격 경쟁력에만 의존하는 것이다. 

최근 개방형 혁신은 제조업뿐만 아니라 서비스업으로도 확산되면서 혁신적인 프로세스로 변화하고 있다. 나아가 이러한 혁신은 기업과 다른 기업 간, 그리고 기업과 새로운 것을 요구하는 소비자와의 교감을 통해서도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국내 일부 대기업은 아직도 개방형 혁신보다는 수직적 생산구조의 낡은 틀 속에 갇혀 혁신을 이루기 힘든 구조를 고집하고 있다. 국내 일부 주력산업이 급속하게 경쟁력을 잃어가는 것도 개방형 혁신에 머뭇거리는 흐름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이런 구조에서 우리는 지금 획기적인 발명은 고사하고 작은 혁신도 어려워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우리 경제 성장모델의 한 축으로 혁신성장을 강조한다. 혁신은 원래 기업 경영 분야를 중심으로 논의가 전개되었다. 경영환경이 만드는 기회와 위협을 적절히 활용함으로써 지속 성장하는 기업이 되기 위해 필요한 시스템을 채택하고 관리하는 것이다. 그러나 국제 경쟁이 날로 심화하면서 혁신의 대상이 확대되고 있다. 기업 단위의 혁신이 국가 경제 발전으로도 범위를 확대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바로 여기에 혁신성장의 필요성과 성장이론의 골자가 담겨 있다.

2010년 OECD에서 ‘혁신성장을 위한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보고서에는 ‘혁신적 경제문화 조성’ ‘경쟁적이고 역동적인 기업활동 장려’ ‘공공부문의 혁신 추진’ ‘사회적 문제 해결에 혁신 적용’ 등 다양한 해법이 제시되어 있다. 우리처럼 경제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혁신성장을 이루려면 근본적으로 기업생태계를 변화시켜야 한다. 먼저, 수평적으로는 산업영역에서 산업 간 칸막이가 제거될 수 있도록 규제 합리화가 이뤄져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인공지능, 빅데이터 기술을 융합하고 활용하는 데 불필요한 규제(red tape)가 없도록 세심한 조치가 필요하다. 그리고 수직적으로는 폐쇄적 전속거래에서 탈피해 혁신이 일어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무엇보다 개방형 혁신이 일어나게 하기 위해선 폐쇄적 의사결정구조를 타파해야 한다. 기업, 기술 개발자, 소비자들이 상호 소통하는 가운데 혁신 아이디어를 주고받으며 정교한 혁신 플랫폼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혁신은 외부의 전문 지식과 참신한 아이디어가 내부의 생산 능력과 결합할 때 일어난다. 그리고 이러한 수평적 산업 융·복합화와 수직적 개방형 혁신은 결국 동반성장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정운찬 |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한국야구위원회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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