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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 키 재기’라는 유명한 속담이 있습니다(일본에도 ‘도토리 키 견주기’라는 속담이 있는데, 어느 쪽에서 흘러든 것인지 아직 모릅니다). 정도가 고만고만한 사람끼리 서로 잘났다고 다툰다는 말이죠. 도토리는 참나무의 열매입니다. 그리고 참나무는 몇 종류가 있는데 수종마다 열리는 도토리가 길이도 모양도 제각각입니다. 상수리나무나 굴참나무 도토리는 동글동글하고, 떡갈나무와 졸참나무와 갈참나무 도토리는 다소 기름합니다. 그리고 신갈나무 도토리는 동글납작하죠. 제일 짜리몽땅합니다. 또한 한 나무 한 나무초리에 서넛씩 뭉쳐 달린 도토리 사이에도 크고 작음이 있습니다.
도토리끼리 희비로 경쟁해봐야 자기들 사이에서나 먹히는 메이저리그 저 밑자락 ‘동네리그’입니다. 동글납작 신갈나무 도토리들 사이에서 으쓱한들 떡갈나무 도토리 옆에 서면 올려다봐야 합니다. 갈참나무 도토리가 껑충하고 날씬한 허리춤에 양손 짚고 고개 세운들 상수리나무 도토리 앞에서는 실한 걸로 깨갱입니다. 이 모두를 피식 웃으며 ‘우리가 왕중왕이군’ 하는 굴참나무 도토리들도 투실한 밤톨 앞에선 올망졸망입니다.
치졸하다는 말에 딱 맞는 게 도토리 키 재기일 겁니다. 생각 유치한 채 큰 사람은 “너넨 이런 거 없지? 이거 못하지?” 애처럼 으스댑니다. 경험과 반경이 좁을수록 ‘내가 왕’입니다.
산에서 내려다보면 모두 성냥갑이요 도토리만 한 성공입니다. 나 좀 대단하다 안달하며 성적과 직장, 연봉과 평수 내비쳐봐야 ‘쥐뿔! 그래, 네 똥 더럽게 굵다’ 주먹감자로 내지르는 팔뚝 세리머니만 받을 뿐입니다. 잘난 도토리는 먹히고 못난 도토리가 참나무로 우렁우렁 클지, 인생사 부침(浮沈)은 도톨도톨 안에선 그 누구도 끝내 알지 못합니다. 비교우위질은 아직 고만고만한 도토리니까 하는 겁니다.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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