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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아이 봐주는 조부모 등 친·인척에게 월 30만원의 돌봄수당을 지급하기로 한 발표가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여성의 사회진출 증가에 따른 육아 공백을 현실적으로 조부모가 메우면서 이에 대한 공적 부조 없이는 효과적인 출산·양육 정책을 수립할 수 없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애 키운 공은 없다’며 사회적으로 크게 인정받지 못했던 조부모들의 육아 기여도를 공적인 영역으로 끌어왔다고도 볼 수 있다. 실제로 보건복지부의 2018년 보육실태조사에 따르면 개인 양육 지원을 받는 사람 중 조부모에 대한 의존도가 10명 중 8명(83.6%)으로 가장 높았다.

다만 부정수급 가능성, 적용 대상인 중위소득 150% 이하 제한 등은 과제다. 서울시 역시 “예산 한계와 시범사업이라는 점을 고려해 대상을 결정한 것으로, 앞으로 소득 기준을 폐지하는 게 맞다고 본다”고 밝혔다. 이는 오세훈 시장이 11년 전 무상급식 사태 때 보편적 복지에 반대하며 주민투표에서 패배했던 사례와 비교하면 서울시의 전향적인 자세가 놀랍기만 하다. 미국 기업가 일론 머스크까지 한국의 출산율을 우려할 정도로 국내 상황이 심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황혼 육아는 핵가족 시대의 트렌드처럼 보이지만 사실 조부모의 아이 양육은 역사가 깊다. 조선 중기의 선비 이문건(1494~1567)은 1551년부터 1566년까지 손자를 양육하며 그 경험을 일기 형식으로 기록했다. 이것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육아일기로 알려진 <양아록>이다. 또 퇴계 이황(1501~1570)은 손자 이안도(1541~1584)에게 약 16년 동안 125통의 편지를 보내 글을 통해 손자를 교육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처럼 조부모가 자녀를 키워본 경험과 지혜를 바탕으로 한 세대를 건너 손주를 양육하고 교육하는 것을 ‘격대교육’ ‘격대육아’라고 한다. 이는 현대사회에서도 그 효과가 여러 연구를 통해 증명되기도 했다. 가령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의 엘더 교수팀은 조부모와 손자녀의 상관관계를 조사한 결과 지리적으로 가깝고 자주 접촉할수록 아이의 성적과 성인이 된 후의 성취도가 높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내가 편견 없이 자랄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외할머니 덕분이었다”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할머니와의 대화와 독서가 나를 만들었다”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등 세계적인 명사들도 자신들의 성장 과정에 조부모가 큰 역할을 했음을 강조해왔다. 국내 한 공중파 방송도 몇 년 전 관련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기대치가 높고 욕심이 많은 부모보다 조부모가 눈높이 교육과 관찰에 있어 훨씬 유리하다”며 “함께 살지 않더라도 정기적인 연락을 통해 할머니, 할아버지가 손주들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주는 것이 좋다”고 지적한 바 있다.

조부모 양육 시대, 현실적으로 피할 수 없다면 부모들은 죄책감이 아닌 긍정적인 자세로 이에 임하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조부모의 체력적 한계를 인지하되, 내 아이에 대한 사랑을 더해주는 존재로서 조부모를 존중한다면 아이의 정서는 풍부해지고 엄마도 안심할 수 있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는 말은 언제나 진리다.



문주영 전국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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