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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재발견됐다’. 세계의 인식이 중견국에서 민주적 선진국으로 바뀌었다. 신천지발 감염 대확산의 불길을 잡은 덕이다. 국제사회는 개방적이고 투명하며 민주적 방역 성공에 더 주목했다. 지도자의 리더십, 전문적이고 헌신적인 보건행정, 세계 최고의 ICT 역량, 진단 키트로 대표되는 방역 제품 기술력, 위기 극복에 적극 동참한 높은 시민의식. 모두가 경이와 찬탄의 대상이 됐다. 한국은 ‘방역 교과서’를 새로 써가고 있다.

코로나19는 자만과 우월의식에 찌든 선진국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다. 특히 일극(一極) 국가 미국의 상황은 처참하다. 방호복 대신 비닐을 뒤집어쓴 의료진, 마트에서 휴지 쟁탈전을 벌이는 시민들의 모습이 TV를 통해 전 세계로 방영됐다. 자원과 물자가 무궁무진할 것 같았던 미국 맞나 싶었다. 에볼라 사태와 금융 위기 때 “함께 대응하자”며 선도적으로 나섰던 리더십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개방, 소통, 이동의 자유라는 유럽연합(EU)의 정신과 자부도 무참하게 꺾였다. 지금 유럽 각국은 격리, 통제, 폐쇄 정책을 취하고 있다. ‘서구 선진국 신화’가 무너져 내리고 있는 것이다. 슈퍼파워들이 코로나에 휘둘리는 사이 국제사회의 리더십 공백도 길어지고 있다. 이 시점에 한국이 국제사회 조명을 받고 있는 것은 시사하는 바 크다. 스티븐 월트 미 하버드대 교수는 “코로나19 사태는 힘과 영향력이 서양에서 동양으로 이동하는 것을 가속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세계가 놀라워하지만 정작 한국 내부의 분위기는 다르다. 국민 다수는 ‘방역 성공’에 OK 버튼을 눌렀지만 반대의사를 표명한 이도 적지 않다. 진영에 따라 평가기준이 달라지는 한국 정치의 병폐다. 미국 외교전문지 ‘디플로매트’ 최근호 보도에 따르면 코로나 대응 만족도가 지지 정당 및 이념에 따라 극명하게 갈렸다. 지난달 리얼미터 조사에서도 미래통합당 지지층의 경우 정부가 잘못 대응했다는 응답이 82%에 가깝게 나왔다. 온 국민이 똘똘 뭉쳐 이룩한 성과마저 부정하는 정치로는 나라가 제대로 돌아갈 수 없다.

보수 일각에서는 정부는 한 게 없는데 국민과 보건당국이 잘했기 때문에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강변한다. 그렇다면 류현진 선수는 순전히 왼팔 하나로 메이저리그 최고투수가 됐다는 말인가. 막말도 모자라 억지까지 쓰는 셈이다. 보건당국이 정부와 별개의 기관인 것처럼 인식하고 있는 것도 우습다. 이러니 방역 성공도 각국 정상들이 번호표 뽑듯 돌아가며 문재인 대통령과 통화하고 외신들의 호평이 쏟아지고 나서야 마지못해 인정하는 이상한 일이 발생한다. 미래통합당은 총선 당시 전 국민 재난지원금 50만원을 주장하더니 이제는 일괄 지급을 반대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세계는 국제질서의 대전환기를 맞고 있다.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은 “코로나 팬데믹은 세계 질서를 영원히 바꿀 것”이라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한국은 세계로부터 가장 주목받는 나라가 되어 있다. 어쩌면 5000년 역사에 국운상승의 가장 좋은 기회가 찾아온 건지도 모른다. 코로나로 인한 경제 파탄이 예상되는 가운데 한국에서는 다른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 지리경제학자 장 폴 로드리그는 “한국은 첨단제품의 세계 공장이 될 자격을 갖췄다”(중앙일보)고 말했다. 한국이 코로나 대처 과정에서 투명하고 믿을 만한 국가로 각인되면서 글로벌 기업 경영자가 믿고 생산을 맡길 만한 선호 지역으로 떠올랐다는 의미다. 그러면서 중국에 대해서는 “전염병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곳에 기업가들이 공장을 두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국제사회에서의 한국의 역할이 비단 경제·산업 분야에 국한돼선 안된다. 한국은 국제 사회의 위기 극복 노력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 특히 민주적 방역 성공의 노하우를 타국과 공유하는 것은 한국만이 할 수 있다. 우방국은 물론 저개발국에 대한 방역 물자 지원은 대폭 늘릴 필요가 있다. 이는 코로나19 사태 극복이나 경제 대응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다. 코로나는 인류에 대한 도전이고 연대와 배려는 국경을 넘어야 한다.

‘대전환의 기회’에도 골든타임은 있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향후 한두 달 동안 각국 정부가 하는 일이 향후 몇십년의 세계의 형태를 결정짓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시한은 국제 연대에도 적용될 터이다. 한국은 최소한 방역분야에서는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역할을 해낼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다. 이번만은 정치가 발목을 잡지 않기 바란다.

<조호연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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