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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운전을 하게 된 지 5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시작한 운전은 신세계였다. 처음 차를 몰고 거리에 나선 날의 두려움과 설렘은 물론이고 음악을 크게 틀고 창문을 내리고 달렸던 여름밤, 뺨에 와 닿던 바람의 느낌까지 생생하다. 당연히 좌충우돌 시행착오도 많았다. 3일 만에 어처구니없는 접촉 사고를 내 뒷목 잡고 내린 앞차 운전자와 합의를 봐야 했다. 라이트를 끄고 내리는 것을 잊어버려 차를 방전시키고, 기어를 D에 놓고 시동이 안 걸린다며 패닉에 빠져 긴급 출동을 부르는 건 가벼운 축에 속했다. 한낮에 헤드라이트를 켜고 돌아다녀 보다 못한 옆차 운전자가 와서 꺼주기도 했고, 라이트가 고장난 채로 밤에 고속도로에 진입했다가 기겁한 적도 있다.


실수가 줄어들고 운전이 익숙해지면서 나름의 원칙도 생겼다. 택시와 버스는 이기려 들지 말 것, 배달 오토바이와 자전거는 피해 갈 것, 수입차는 무서운 게 없으니 조심할 것 등. 시간이 흐르면서 바뀐 원칙도 생겼는데 바로 기름값이었다. 처음에는 차계부도 쓰고, 유가 동향에도 귀를 기울이며 주유할 타이밍을 모색했다. 카드 할인이 되지 않는 주유소는 가지 않았고, 탱크를 채우고 다니면 연료 소모가 빨리 된다는 전문가의 조언을 새겨 늘 3만원어치씩만 주유를 했다. 그러나 지금은 ℓ당 50원 이상 싸지 않으면 그냥 보이는 주유소에 들어간다. 기름값과 타협을 하고 나자 ‘과태료’란 돌발변수가 나타났다. 불법 주정차 과태료를 내고(내보신 분은 알겠지만 정말 아깝다!), 견인을 당해본 결과 과태료도 미리 내면 20% 감면 혜택이 있다는 것등의 소소한 팁을 생돈 들여 힘들게 알게 되었다. 결국 조금 귀찮더라도 주차장에 세우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싸다는 평범한 진리를 뒤늦게 터득했다. 자동차 검사는 미루면 미룬 일수만큼 과태료가 누적된다는 것도 겪어보고서야 알게 된 생활 속 지혜(?)였다.


차를 소유하게 되면서 가장 큰 변화는 ‘차’라는 변수로 인해 내가 전혀 다른 인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의 발견이었다. 가장 충격적인 변화는 눈을 싫어하게 됐다는 것이다. ‘동심을 잃어버린 어른이 되어버린 걸까’ 싶으면서도 눈 예보 소식을 들으면 집에 갈 걱정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게다가 나는 어느새 어디를 가든 주차가 가능한 곳인지를 가장 먼저 따지는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단지 주차가 편하다는 이유만으로 재래시장 대신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로, 오래된 영화관 대신 멀티플렉스 영화관으로 가는 일이 잦아졌다. 마음은 불편했지만, 편리함에 익숙해진 몸의 간사함을 이기기란 역부족이었다. 가까운 거리도 차를 끌고 가다보니 걷지 않게 되고, 당연한 순서로 살이 찌고 , 운동을 한답시고 돈을 들여 헬스에 등록해놓고, 안 간다고 내 돈 들여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는 가학의 코스까지 겪었는데도 달라진 건 없었다.


사실 우리 사회는 운전자가 되어 도로로 나올 때까지 차를 소유할 수 있는 경제적 능력과 최소한의 자격 외에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차를 갖게 되면서 일어나는 생활의 변화폭을 감안하면 방기에 가깝다. 그러면서도 자동차로 인해 야기되는 각종 문제의 책임은 고스란히 차를 소유한 개인의 몫이다. 정작 사람들은 자신에게 차가 필요한지, 산다면 언제 사야 하는지, 차가 생기면 어떤 점이 달라지는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전혀 교육받지 못한다. 그저 ‘차가 있으면 편하지 않을까’란 막연한 생각 정도로 차를 사고 운전을 시작할 뿐이다. 자동차 보유대수가 1900만대(2.7명당 1대)를 넘어섰는데도 차와 사람의 공존을 위한 어떤 고민도 요구하지 않는 곳이 바로 한국 사회다. 오늘도 거리에는 ‘저도 제가 무서워요’를 써 붙이고 나온 초보운전자들이 가득할 것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운전면허시험 외에 자동차의 소유와 관련한 최소한의 교육이 필요한 때다. 아무런 준비 없이 길거리에 나왔던 5년 전의 나처럼 돈 들여가며 위험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같은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정지은 | 문화평론가·인천문화재단 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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