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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한 목감기로 내리 3주를 앓았다. 그 긴 시간 동안 내 삶은 엉망이 되어 마냥 우울했다. 유난히 병치레가 잦은 나는 나약하기 그지없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이 몸에 대해 늘 탄식한다. 내 몸은 결코 나의 것이 아니다. 병이 들면 죽음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면 헛된 나를 반성하고 삶을 겸손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니 병든 몸이 나에게는 선생이다. 호된 감기를 겨우 물리치니 어느덧 4월이 간다. 유독 봄날은 슬프고 잔인하다. 물에 빠져 죽은 수많은 이들의 원혼이 4월 내내 흐드러진 꽃잎 속에서 흩어졌다. 그러자 이내 5월이 오고 이제는 아득해진 ‘80년 5월’의 무수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면 6월이 와서 한국전쟁 중에 죽어간 혼령들을 또 대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4월에서 6월까지의 계절이란 참혹한 죽음을 기억하는 나날들이다. 그런 죽음과 함께 내 주변에서 죽어간 이들의 얼굴도 떠올려본다. 가족과 지인들의 얼굴과 몸들이 마구 엉키고 좀처럼 또렷한 상을 이루지 못하고 죄다 문드러진다. 산 자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아프게 추억하고 절박하게 기억하는 일이다. 그러고는 이제는 더 이상 불리지 않는 이름을 잠시 호명해본다.

아리에스는 “죽음은 한 개인의 소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 사회 집단에 상처를 입히는 것이므로 그 상처를 치유해야 한다. (…) 죽음은 늘 사회적이고 공적인 사실이었다”라고 말한다. 사회적이고 공적인 사실인 죽음을 상기해본다. 지난 역사 속에서 죽어간 목숨들도 기억해본다. 오늘날 우리는 지난 역사의 현장에서 죽어간 이들을 어떤 식으로 기억하고 인식하고 있을까?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고 깨닫는 것이 산 자들의, 살아남은 자들의 일이자 의무는 아닐까?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공부이자 학문의 영역이고 예술의 자리다. 죽은 이를 기억하고 그 죽음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현재의 삶을 성찰하는 일이 결국 학문하는 일이자 예술의 일이기도 하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김다영양의 어머니 정정희씨 작품 전시회가 열린 4일 안산 성포동 단원미술관에서 관람객이 정씨의 작품 ‘2학년 10반’ 을 감상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최근 ‘죽음’이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죽음이 새삼 성찰의 대상으로, 문제적인 것으로 부상했다. 죽음이 빈번한 사건이자 핵심적인 문제로 떠오른 것이다. 그만큼 우리 주변에서 죽음이 빈번해졌기에 그렇다. 그에 따라 죽음으로 내모는 이 척박한 사회현실에 대한 성찰과 반성이 요구되는 한편 인간의 바람직한 삶과 죽음의 조건에 대한 인식도 뒤를 잇고 있다는 생각이다. 타자들의 죽음은 나의 실존에 영향을 끼치는 매우 중요한 변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타자의 죽음에 주목해야 하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

미술이 자신의 삶에서 유래한 모든 문제를 시각적으로 해명하는 작업이라면 한국 사회에서 빈번하게 자행되는 여러 죽음에 대해서도 작가들이 고민하지 않을 도리가 없을 것이다. 그러한 인식 아래 한국의 구체적인 정치와 현실, 그리고 문화적 현상 속에서 왜 죽음이 초래되고 있으며 어떤 죽음이 문제적인지, 과연 죽음을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미술에서도 긴요하게 요구되는 일이다.

미술이 인간다운 삶과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려는 본능적인 욕망의 실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면 죽음과 죽음으로 이끄는 모든 것에 대해 저항하고 반성하려는 것은 당연한 시도다. 그러니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성찰과 사유를 보여주려는 미술은 결코 죽음을 회피할 수 없다. 이미 인간 존재 자체가 근본적으로 떨쳐낼 수 없는 비극적인 조건 속에 놓여 있다. 그 안에서 미술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아마 ‘애도’일 것이다.

인간은 죽음에 대한 더 많은 앎과 성찰, 애도를 통해 삶을 더 존중하게 된다. 애초에 미술은 애도로부터 시작되었다. 죽어간 이들, 죽음과 부재에 대해 이미지로 저항하고자 한 것이 미술의 역사였다. 죽음을 불러내고 그 죽음에 대해 깊이 사유하며 비극적인 죽음을 위무하고 치유하는 기능이 미술 안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미술인들은 과연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숱한 죽음에 대해 어떤 애도의 작업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박영택 | 경기대 교수·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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