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내가 대학에 입학할 때 학생운동이 미미하게 남아 있었다. 학생운동은 대학생 중 숫자로도 정치적으로도 소수에 불과했지만, 그나마 힘을 발휘했던 건 치솟는 등록금 문제 덕이었다. 학교마다 ‘등록금 투쟁’ 혹은 ‘학원 자주화 투쟁’이라는 이름을 붙인 형태의 집회들이 있었다. OT를 통해 운동권 선배들과 친하게 된 새내기 중 몇몇은 학교 본관에 가서 연좌투쟁을 했다. 어설픈 민중가요와 춤, 구호들이 학생들 사이에서 오갔다. 등록금 투쟁을 승리하면 납부했던 등록금의 일부를 학생들에게 돌려줄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학교 행정조직은 1980년대 이후 학생들을 다루는 노하우를 익혔고, 학생운동은 뉴스거리가 아니었으며, 늘어난 대학의 숫자만큼 대학생이 함께 늘었다. 정치적 주체로서 학생운동의 위상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학생운동은 한총련·한대련 시절을 지나 몇몇 지방대 학생회를 조폭이 접수하는 가운데 정당 학생위원회나 1970년대의 소수 동아리 수준으로 축소했다.

학생운동이 쇠퇴하던 시절은 ‘청년담론’이 히트를 치기 시작한 시점과 포개진다. ‘88만원 세대’부터 ‘N포 세대’ 등 각종 ‘세대론’이 범람했다. 청년담론은 신자유주의 비판과 조응했다. 미디어에서는 청년들의 실상을 전할 ‘청년 필진’을 확보하기 위해 혈안이 됐다. ‘청년’들은 체제를 뒤엎겠다는 ‘변혁의 주체’가 아니라 취업이 어렵고 뜻을 못 펴고 잔뜩 주눅 든 신자유주의 통치체제에서 ‘불안으로 잠식된’ 돌봄의 대상이 됐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때문에 청년들의 불안이 높아졌다고 단정할 수 없다. 먼저, 상실의 대표성. 1990년대까지 ‘당당한 100만 학도’를 정치적 주체로서 자신들의 역할을 이야기할 때, 그 운동 안에는 생활비와 학비를 놓고 저울질해야 하고 선망 직장에 갈 전망이 별로 없는 학생들의 이야기가 빠졌다. 2000년대를 지나 ‘청년 실업’을 이야기할 때, 그건 공무원과 교사와 대기업의 임용·채용 인원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학생운동의 주류 대학과 이른바 ‘청년 담론’을 이끌던 사람들이 다니던 대학은 겹친다. 졸업 후 중소기업에 그럭저럭 가던 지방대생 등은 원래 선망직장과 거리가 멀었다. 둘째, 알고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어떠한 정치경제체제, 경쟁체제와 능력주의 시대를 만드는지의 논의는 리먼브러더스 사태 때 처음 나온 게 아니다. 당시의 청년들이 적절한 대응을 주체적으로 조직하지 못한 정치적 실패가 있다. 체제 비판의 날 섬은 선망 직장 입사경쟁 게임에 대한 공정성 비판과 능력주의 비판으로 전환됐다. 같은 시점 평범한 대학생들과 대학을 나오지 않은 청년들의 일자리 자체는 줄지 않았지만, 고용의 질은 유연화된 노동의 전개로 답보상태이거나 나빠졌다. 노동시장의 재편이 대학 간, 지역 간 격차를 강화했기 때문이다.

노동시장 ‘사각’에 놓인 청년들
불공정·능력주의 비판을 넘어
청년 노동시장 문제의 정치화
‘경험’이 담긴 정책 어젠다를

내 SNS의 타임라인에는 매번 뉴스 기사를 퍼나르면서 “서울 명문대 출신들은 다 공장 현장으로 하방해야 한다”면서 분노를 토하는 지방 청년들이 있다. 전통적 노사관계의 첨예함 속에서 아빠들처럼 원청 정규직이 되지 못하고 고용 조절의 수단으로, 또 산재가 잦은 작업을 맡는 위험한 노동의 담당자로서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들이 존재한다. 중소기업 사무직을 하면서 임금과 처우 개선을 노리고 이직과 퇴직을 반복하는 비명문대 출신 화이트칼라 ‘장그래’들이 존재한다. 지역의 영세한 서비스산업에서 잠시 일하다 경력이 단절될 경우 사회복지사 등의 자격증을 취득해서 그럭저럭 일하려는 젊은 여성들 또한 존재한다. 청년 다수가 내는 복잡다단한 목소리를 담론과 정치가 납작하게 다룬다는 불만은 맞는 말이다.

다수의 청년들은 단순히 노동시장의 하위에 있기에 단순한 사각지대에 놓인 피해자들이 아니라 공부와 일, 때론 가사 노동을 놓지 않으면서 나름대로 좀 더 나은 직업과 삶의 전망을 키우는 ‘건강한’ 사람들이다. 능력주의로 인한 불평등이 첨예하여 세상이 한계에 왔으며 뒤집어져야 한다는 논평들이 부유할 때, 그 세상을 떠받치는 사람들이다. 숫자로도 다수다. 현재 많은 노동조합들이 산업과 지역을 따라 비정규직들을 조직하고, 청년유니온도 지역별로 일반노조를 만들어 청년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좀 더 나은 고용조건과 안전한 작업환경을 지속적으로 교섭하고 있다. 라이더 유니온처럼 새로운 형태의 비정형 노동자들에 대한 조직화도 한참이다. 자본주의가 역동적인 것만큼 새로운 형태의 현장 민주주의의 구상과 실천도 계속 진행 중이다.

며칠 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통과됐다. 처벌이 솜방망이가 됐다고 욕하는 데 그칠 게 아니라, 그 사이에서 ‘김용균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조건을 교섭하는 언어와 방식이 필요하다. 새해에는 청년정책 기본계획을 넘어 청년 노동시장의 다양한 문제가 정치화되고, 다수의 청년들이 겪는 구체적 경험이 대표되는 정치의 구상과 조직화, 정책 어젠다가 시작됐으면 한다.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