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2021학년도 대학입학 정시모집 합격자 발표와 등록이 한창이다. 지방대의 위기가 담론이 아닌 현실이 됐다. 서울에 입지한 명문대들과 몇 개의 과학기술원을 제외하면 지방 사립대는 물론 지방 거점 대학도 전체 경쟁률 3 대 1을 채우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수험생들이 정시에서 지원하는 학교가 가, 나, 다군 3군데라는 것을 감안하면 경쟁률 3 대 1이 되지 않으면 어떤 지원 단위든 미달될 가능성이 있다. 입시 게임의 배치표에서 가장 아랫단에 위치한 지방 사립대들은 장학금 지급으로 열세를 만회해 보려는 중이다. 어떤 대학교는 일시금 100만원, 다른 대학교는 몇 학기 등록금 면제. 어느 재단이 더 재정 여력과 의지가 있는지를 정시 합격 신입생 장학금을 통해 잘 알 수 있다. 적어도 10년 전부터 교육현장, 학계와 언론 모두 “벚꽃 피는 순서대로 문을 닫는다”며 위기를 언급해 왔지만 갑자기 현실이 되자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보다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만 같다.

무엇이 필요할까 가만히 생각해본 결과 지방 제조업과 지방대 문제가 같은 구조 안에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됐다.

우선 가장 많은 숫자의 사람이 포함되지만 각각의 인지도는 떨어진다는 점이다. 가장 많은 노동자들이 일하는 곳이 지방의 공장이나 사업장이고, 가장 많은 학생들이 진학하는 곳이 지방대다. 대한민국의 취업준비생을 비롯, 모든 시민들이 삼성과 현대차를 알지만 거기에 다니는 사람은 소수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학부모와 수험생들은 SKY 대학을 알지만 실제로 그들 대학에 다니는 비중은 합쳐 봐야 대학생의 1% 수준이다. 반면 지방에 있는 중소 제조기업들은 지역 주민들도 모르는 경우가 많고, 지방대는 지역에 있는 학생들도 대학의 이름을 모르거나 꺼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인지도가 높지 않으니 일단 진입을 꺼리는 것도 당연하다.

두 번째로 당사자를 제외한 나머지 국민들의 이미지가 좋지 않다. 가망이 없으니 다른 걸로 대체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항상 듣는다. 경기가 위축되어 업계 구조조정이 필요해지면 인터넷 포털 댓글창에는 “가망 없는 회사는 국민 혈세 축내지 말고 문을 닫으라”는 험한 댓글이 오간다. 보통 지자체들은 서비스 산업, 특히 관광업을 대안으로 내민다. 그러나 서비스 산업과 관광업이 없었던 게 아니라 영세하고 노동착취적이며 비전이 보이지 않아서 청년들이 꺼리고 지역을 떠났다. 규모의 경제를 키울 계획은 잘 안 보인다. 지방 사립대의 어려움 기사 밑에는 “대학이 너무 많다. 취업도 안 되는 학교는 웬만하면 다 문을 닫아야 한다”는 댓글이 달린다. 그래서 미디어는 4년제 대학을 나와 폴리텍이나 전문대로 ‘U턴’하는 사례를 보여주며 ‘적당히 배우라’는 신호를 주기도 한다. 그런데 간호학·물리치료학·사회복지학 등 취업용 자격증을 주는 전공을 제외하면 폴리텍이나 전문대를 나온 학생들 앞에는 노동조합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n차 하청이나 사내하청 생산직 일자리들만이 놓여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지역의 인재’는 어디서 만들어야 하는지 물으면 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정원도 채우기 버거운 지방대
지역주민도 모르는 중소기업
낮은 인지도에 ‘빈익빈’ 가속
정부 ‘산학 연계’ 비전은 뭔가

세 번째로 중앙에서 잘나가는 것들을 유치해야 한다는 소리를 듣는다. 지자체들은 대기업과 공기업들을 산업단지와 연구단지에 유치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명문대 캠퍼스나 과학기술원을 유치하기 위한 노력도 이어진다. 그러나 새로 생긴 대기업·공기업의 일자리는 지역의 대학생들에게는 ‘넘사벽’이다. 지역에 유치된 명문대 캠퍼스나 과기원은? 지역의 우수한 고등학생들이 진학하고, 이들이 서울의 회사나 대학원으로 진출하는 디딤돌이 된다. 같은 시간 예산 제약 속에서 조금만 더 역량을 높이면 질 좋은 고용과 혁신적인 기술력을 키워낼 수 있는 지역 중소기업과, 특성화를 통해 학생들을 잘 키워내려 애쓰는 지방대들의 노력은 묻히게 된다. 지방의 역량은 기업과 대학 유치만으로 크게 향상되지 못할 확률이 높다.

인지도가 높은 글로벌 대기업과 명문대학에 모든 취준생과 수험생들이 갈 수 없고, 이미지가 좋지 않다고 지역의 모든 중소기업과 사립대학교를 청산할 수 없고, 지역으로 유치되는 대기업과 과학기술원의 수혜를 모두가 볼 수 없다는 건 확실하다. 그래도 지역에서 나름 역할을 하고 있고 역할을 해줘야 하는 허리를 탄탄하게 만들 계획을 생략하고서는 다음 단계로 나갈 수 없다. 모든 대학들이 ‘구조조정 계획’으로 상반기 계획을 짜며 극한적인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는 지금 교육부의 계획은 무엇일까. 경남을 비롯해 지역 대학 간 연계로 산업·대학·연구소·지역의 연계망을 강화하는 플랫폼 공유 대학의 계획과 교육부의 대학 구조조정 계획의 관계는 어떻게 연결되는가? 구조개혁평가를 2018년 대학기본역량진단으로 이름을 바꾸고 강제 퇴출을 최소화했으니 시장에 맡겨두면 된다는 생각일까? 학생과 지역사회와 산업에 단기·중기·장기에 걸쳐 미칠 영향은 충분히 평가되어 있는가? 학령인구가 안정화되는 5년을 그냥 버티라는 신호일까? 알 수가 없다. 들을 수 없는 교육부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