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욱이 가장 근원적인 문제인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에 대해서는 아예 문제점으로 인식을 하지 않는 분위기이다. 중소기업 노동자들과 자영업자의 비율도 OECD 국가들에서 가장 높지만 중소-대기업의 임금격차도 최악에 달하고 자영업자들의 소득비율도 최악이다. 애당초 소득이 평등하게 분배되지 않는 상태에서 아무리 결과가 평등하고 공정하길 원해봐야 한계가 있을 뿐 아니라 어떤 경우에는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한다.
최저임금인상도 자영업자들 타격이 두려워 과감하게 할 수 없고 기본소득 등의 보편적 복지도 불평등이 이렇게 심한 상황에서는 겉치레 수준의 액수 이상으로 추진하지 못한다. 노동운동도, 자본가 대 노동자의 대립구도를 무력하게 만드는 중소-대기업의 생산성 격차의 해소가 임금분배율 제고보다 더 중요한 목표인지 헷갈릴 지경에 이르렀다.
강제징용판결과 관련된 일본수출규제 이후 소재·부품·장비(소부장) 분야에서 독일, 일본, 대만 등에 비해 강소업체들의 숫자나 규모가 한국은 너무 허약했다는 점이 드러났다. 정부가 중소기업 중심으로 소부장 산업을 키우겠다고 나섰고 최근 대기업 몇군데가 중기부와 함께 상생지원프로그램을 시작했지만 중소기업들이 이런 시혜성 지원에 의존하여 개발을 넘어선 양산전략을 세우기는 쉽지 않다. 특히 이미 엄청난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임금격차는 계속된 인력유출을 유발하여 중소기업의 의지를 꺾는다.
이 부분은 참 일본이 부럽다. 한국 중소기업의 평균 임금은 대기업 대비 50% 수준인데 반해, 일본은 80%수준을 유지해 왔다. 일본 대기업들도 중소기업들에 단가압박을 하지만 공동이익을 위해 자제한다. 제품 개발은 물론 기획에 이르기까지 중소-대기업이 협업하는 공동연구 개발이 정착되어 있다. 중소-대기업관계는 한국에 비해 수평적이다. 중소기업 노동자 숫자는 한국(85%)이 일본(75%)보다 많지만, 품위있고 안정적인 일자리 숫자에서 한국이 일본을 따라갈 길은 멀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도리어 국가가 나서서 수직적인 경제구조를 고착화한다. 각종 신산업의 영역이 열릴 때마다 대기업들에 유리한 최소자본요건을 세워 중소기업들을 배제한다. 세계 유일의 ‘망이용료’ 담론도 대기업 망사업자들 사이의 경쟁을 줄이기 위해 인터넷 국제기준에 반하는 세계 유일의 ‘발신자종량제’를 국가가 강제하면서 시작된 것이다. 아시아나-대한항공, 현대중공업-대우조선의 합병을 국가가 주선하는 것도 하청업체들에 미치는 영향을 간과한 처사이다. 변호사 및 의사 정원제 등으로 결국 대기업, 공무원, 전문직 외에는 품위있고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기 어려운 수직적인 경제구조를 자초해온 것은 오래된 일이다.
더 큰 문제는 대기업들의 과점적 행위를 막지 않는 소극성이다. 지난 20년간 영화시장에서 2개 대기업이 스크린의 80%를 점유하면서 투자배급까지 겸영하여 비계열사 투자배급사들을 거의 전멸시킨 상황에 손을 대지 않았다. 심지어 코로나19 대응에 있어서도 OECD 최하의 공공병상 비율(10%)을 가지고도 일반병상 동원령을 규모있게 내리지 못하여, 우리 정부는 인구 대비 최저수준의 일일 수천명의 신규환자 숫자만으로도 거리 두기를 풀었다 죄었다 해야 하는 상황이다. ‘병상뿐 아니라 인력도 문제’라면서도 의사정원제 얘기는 없다. 선거 때가 되었으니 이제 중소-대기업관계 변혁에 대해 누구라도 한마디 해야하건만 도리어 여당은 국가핵심전략산업특별법이라는 또 하나의 친대기업, 반노동자법을 제정하여 협력업체들의 영업의 자유와 노동자들의 산재청구권을 위협하는 커다란 칼을 대기업들에 쥐여주고 있다.
박경신 고려대 교수·오픈넷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