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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영국이 국민투표를 통해 EU 탈퇴를 결정했다. 적어도 투표 직전에 했던 예측과는 상반된 결과이다. 세계의 이목은 곧 그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 것인가에 모아지고 있다. 그렇다고 당장 세계경제에 심각한 위기가 온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듯하다. 2008년 지구적 차원의 금융위기가 발생한 이후 사람들이 반복되는 세계경제 위기에 그럭저럭 견디는 데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같은 상황이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겠는가?

지난주 한국을 방문했던 데이비드 하비가 이 문제와 관련해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를 했다. 잘 알려진 것처럼 그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분석에 탁월한 업적을 내놓은 학자이다. 공개강연에서 그는 반자본주의를 추구하는 자신보다 자본가들이 자본주의에 더 큰 해를 끼치고 있다는 풍자로 최근 사태에 대한 독특한 시각을 드러냈다.

따로 진행되었던 소규모 토론모임에서는 자본가들이 개별적으로는 큰 이득을 볼 수 있을지 몰라도 자본가계급으로서는 심각하게 분열돼 있어 현재의 위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자본가계급이 단결해 신자유주의 드라이브를 걸었던 1970년 후반의 상황과 지금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본주의에 심각한 위기가 출현할 가능성이 높은데 좌파들은 그에 대한 대안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쓴소리도 보탰다. 자본주의 위기에 대한 그의 판단은 비판적 이론가의 상투적 주장으로 간주되기 쉽다.

그러나 하비의 주장은 미국 대선후보 트럼프의 부상, 영국의 브렉시트 등 현재 출현하고 있는 이례적 현상들을 이해하는 데 나름 유익한 시각을 제공해준다. 이 같은 현상들이 일과적이고 우연적인 것이 아니라 자본가계급의 무능력을 드러내는 사례이며, 자본주의 세계체제에서 진행되고 있는 어떤 중요한 변화의 징후라는 것이다. 통념으로는 예측하거나 설명하기 어려운 변화가 세계적 차원에서 반복되고 있다는 점에서 하비의 지적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눈을 한반도로 돌리면 사태는 더 심각하다. 영국이 브렉시트를 결정하는 시점에 북한이 (북한은 ‘화성-10’이라고 명명한) 무수단 미사일 발사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핵탄두 폭발실험만 하면 북한의 핵개발이 완료되는 상황이다. 그렇게 되면 한반도 비핵화는 물 건너가고 군사적 긴장이 한층 고조될 수밖에 없다. 이는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북의 미사일 실험을 놓고 여러 논평이 이어졌지만 해결책은 보이지 않는다. 북에 대한 강경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이는 의례적 반응에 지나지 않는다. 그저 북을 비판할 수 있는 다음의 또 다른 위기나 기다리는 격이다.

상태가 이에 이르면 당연히 정치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정치가 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가라는 상투적인 비판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는 현재 정치가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문제에 대면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를 묻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위기를 정치적으로 활용할 뿐 실질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새 국회가 현 위기에 대한 해결책을 찾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최근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에서는 이 문제들에 대한 진지한 논의보다 개헌이 가장 중요한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 과연 이것이 총선 때 표심이 원했던 것이며 현재 위기에 대한 올바른 대응이라고 할 수 있는가? 개헌이 필요하다면 절차에 따라 진행할 수 있다. 내년 대선에서 공약으로 내거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러나 현재 국민은 개헌을 가장 중요한 정치과제로 보고 있지 않으며, 개헌을 주장하는 사람들 내에서도 생각이 모두 다르다. 권력구조 문제만 해도 4년 중임제, 이원집정부제, 내각제 등 양립하기 어려운 아이디어들이 제각각 등장하고 있다. 위기 대응과는 별 관계도 없다. 개헌을 놓고 구체적인 논의에 들어가면 의미 없는 정쟁만 촉발할 가능성이 높다.

부정적으로 보자면, 현재처럼 방향이 불분명한 개헌논의는 안팎의 위기에 대해 실질적인 대안을 논의할 의지와 능력도 없는 상황에서 정치권의 기득권만 유지하려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야권은 총선을 통해 대책 없이 위기만 심화되고 있는 현재 상황을 변화시키라는 국민의 뜻을 부여받았다. 야당이라는 조건에서 당장 뚜렷한 변화를 만들어내기 어렵다는 점은 국민도 알고 있다. 그러나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은 보여줘야 한다. 적어도 당분간은 개헌논의가 국민의 절박한 요청을 수렴할 수 있는 틀이 될 수 없다.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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