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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박근혜 대통령이 성주군이 제안하는 다른 지역을 검토할 수 있다는 발언과 이에 국방부가 우왕좌왕한 모습은 사드 배치 결정의 졸속성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졸속성은 물론이고 사드 배치의 비합리성을 적극적으로 추궁해야 할 제1야당 더불어민주당은 여전히 입장을 분명히 정리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지층 내에서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지만 안보문제와 관련한 정부 결정을 반대하는 것이 대선에 유리하지 않다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내년 대선에서 사드 문제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현재 단언하기 어렵다. 확실한 것은 선거가 1년 반 가까이 남은 지금부터 선거를 의식해 안보 관련 쟁점에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면 선거 때는 이 이슈에 대한 주도권을 더 확실하게 여권에 넘겨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국가의 가장 중요한 임무인 국민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대안을 갖지 못한 세력에게 국민들이 지지를 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더민주 내에서도 개별적으로는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히는 의원들이 증가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들의 주장이 당론으로 결정될 수 있는가라는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국민들에게 믿음을 줄 수 있는가도 문제이다. 신념과 장기적 비전에 따른 것이 아니라 지지층 내의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여론을 의식한 행동으로 보이는 경우가 많다.

지난 3일 더민주 의원들이 성주군을 방문했을 때, 성주군민이 들었던 “열심히 하겠습니다 말고, 육하원칙으로 대답해주십시오”라는 피켓이 그러한 의구심과 정치권에 대한 요구를 잘 표현하고 있다. 사드 배치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일찍부터 밝혀온 국민의당에도 이 요구는 마찬가지로 제기된다.

이제 정치권은 사드 배치 결정에 대한 반대를 넘어 자신의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안보문제에 대해 정정당당히 입장을 밝히지 못하는 것이 큰 문제이지만 이 쟁점을 정치적으로 소비만 해서는 역풍을 부를 수 있다.

야당 내 사드반대론에 이 같은 우려를 하는 이유는 야당에서 남북관계를 포함한 한반도 평화문제에 대해 초점에 어긋나는 주장이 여러 차례 출현했기 때문이다. 특히 총선 전에는 정부의 무책임한 대북제재론에 추수하는 태도를 보여준 바도 있는데 이에 대한 명확한 정리가 없는 상태에서 사드 배치에만 반대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박근혜 정부도 이 틈을 노려 증가하는 북한으로부터의 위협을 억제하기 위해 사드 배치라도 해야 하는데 야당은 대안도 없이 이를 반대만 한다고 역공하고 있다. 따라서 남북관계와 한반도평화에 대한 명확한 비전이 없이는 야권이 앞으로, 특히 내년 대선까지 사드 논쟁을 주도해 가기는 어렵다. 현재 이 문제에 대한 새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이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한국의 안보를 강화했는가라는 물음부터 제기해야 한다.

두 정부의 임기 동안 북한은 단지 한번의 폭발력이 핵폭탄으로 사용되기에는 크게 모자란 핵폭발 실험을 한 수준에서 핵탄두를 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는 정도로 소형화하고 여러 운반수단을 발전시키는 수준으로 핵능력을 강화했다. 그럼에도 박근혜 정부는 제재가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는 자기최면만 걸고 있다.

이번 사드 배치 결정도 제재 일변도의 무책임한 대북정책의 필연적 귀결이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 실험을 반복하면서 제재로 문제를 해결하리라는 기대가 물거품이 되면서 중국에 정책실패의 원인을 돌릴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그리고 중국이 유엔 결의 내에서 진행하고 있는 대북제재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을 자초하고 있다. ‘대북제재-북의 핵능력 강화-더 강한 제재’의 사이클이 한반도의 안보상황을 악화시키고 있을 뿐 아니라 외교와 경제도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 한번 잘못 채워진 단추가 이후 행보를 계속 어긋나게 만들고 있는 셈이다. 박근혜 정부는 안보에서도 실패하고 있는 정부이다.

야당들은 박근혜 정부의 이처럼 무책임하고 적반하장식의 행보에 정면으로 맞서고 한반도 안정과 평화를 위한 새로운 경로를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사드 논쟁을 개별 무기체제의 합리성을 따지는 것을 넘어서 한반도의 평화비전을 둘러싼 경쟁으로 만들어야 이 논쟁에서 이기고 또 대선에서 승리할 가능성도 높일 수 있다. 야권이 안보를 회피할 의제나 약점이 아니라 강점으로 만들어야 할 때이다.

이남주 | 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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