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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한·미가 한국에 사드를 배치하기로 결정한 이후 이를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14일 “지금은 사드 배치와 관련된 불필요한 논쟁을 멈출 때”라며 “이해당사자 간에 충돌과 반목으로 정쟁이 나서 국가와 국민 안위를 잃어버린다면 더 이상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며 사드 배치를 기정사실로 만들고자 했다.

민주주의가 정상 작동하는 나라라면 나올 수 없는 발언이다. 배치 직전까지 국방장관이 모른다는 식으로 연막을 쳤고, 기습적으로 배치를 결정한 이후에는 그에 대한 논의가 필요 없다는 식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열린 사드배치 반대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관련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태도는 국가를 자신의 사유물로 생각할 때만 가능하다. 사드 배치는 국내는 물론이고 국제적으로도 큰 논란을 초래한 문제다. 그런데 당사국의 국민이 이것이 국가안보에 유리한지 아닌지를 논의할 수 없다는 것이 정상인가? 다행히 상황은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사드 배치의 합리성을 따지는 논의가 경북 성주군민으로부터 국회에 이르기까지 활발하게 진행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권위주의 시기부터 안보 관련 정책결정은 행정부가 사실상 독점해왔다. 전쟁을 경험하고 남북이 분단되어 있는 나라에서 국가안보를 명분으로 내세운 결정에 이견을 제기하기는 어려웠다. 관련 정보가 제대로 공개되지 않은 탓에 시민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는 더 어려웠다. 민주화 이후에도 이 같은 상황은 계속돼 왔다.

그러나,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 반대투쟁이나 제주 강정 해군기지 건설 반대투쟁 등이 중요한 전환점을 만들었다. 이 활동들이 목표를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국가안보를 명분으로 내세운 정책결정이 진정으로 안보에 도움이 되는지, 그렇다고 하더라도 시민의 삶의 안정을 해치면서까지 진행될 가치가 있는지 등의 질문을 공론장에 제기했다. 그 과정에서 안보 문제에 대한 국민적 차원의 학습도 진행됐다.

이제 우리 국민은 권위주의 정부가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른 “국가안보를 위해서”라는 한 마디에 위축되지 않는다. 사드 배치 결정은 이런 학습과정을 한단계 높여주고 있다. 당장 성주군민들도 이제 레이더 전자파 문제부터 사드가 한반도에 필요한 무기인지에 대해 인터넷을 뒤져 스스로 학습하고 있다.

더욱이 사드 배치는 성주군민에게만 관련된 문제가 아니다. 국방장관 스스로 사드 배치가 수도권을 방어하지 못한다고 인정했다. 사드가 북핵을 완전히 방어할 수 있다는 식의 신화를 퍼뜨린 당사자가 만약의 사태에 북의 첫 번째 공격목표라고 할 수 있는 지역도 방어를 못한다고 말한다.

최근 안보문제를 내세운 여러 조치들은 계속 국민의 삶을 불안하게 만들어왔다. 금강산 관광 중단은 강원도민의 삶을, 개성공단 사업 중단은 중소기업과 관련된 시민의 삶을, 그리고 사드 배치는 중국에 진출한 기업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나아가 사드 배치는 동북아의 군비경쟁을 촉발하며 남한을 겨냥한 중국과 러시아의 미사일을 크게 증가시킬 수 있다.

이런 식의 안보가 진정한 안보인가? 군사적 긴장만 고조시키고 정작 시민의 안전은 보장하지 못하는 것이 어떻게 안보강화인가? 이제 국민의 삶에 평화와 안정을 가져다줄 수 있는 안보는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가 불가피해졌다. 시민적 입장에서 안보를 이야기하고 새로운 합의를 만들어가는 것은 우리 민주주의를 질적으로 발전시키는 데도 중요하다.

이에 대한 인식이 정치권, 특히 야당들 내에서 점차 확산되고 있지만, 초기 대응에는 아쉬운 점도 적지 않다. 특히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사드 배치의 정당성을 따지기보다 이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였다. 안보 문제를 자신에게 불리한 의제로 판단하고 가능하면 이를 이슈화시키지 않고 피해가려는 관성적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이다.

남북이 분단되어 있고 한반도가 미·중이 힘겨루기를 하는 무대로 전락할 위험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안보 문제는 피할 수 있는 의제가 아니다. 내년 대선까지 한반도 내부와 주변 상황도 녹록지 않다. 정권안보를 국가안보로 포장하려는 유혹도 커지는 시기이다.

이럴 때일수록 야당들은 정부의 입장에 적당히 동조함으로써 안보정당으로 재탄생할 수 있다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 반대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고 한반도 평화를 실현할 수 있는 담대한 비전을 갖고 사드 배치가 촉발한 논란에 대응해야 한다. 나아가 어떻게 해야 시민의 안전과 평화로운 삶을 보장할 수 있는가에 대한 민주적 논의의 장을 확보하고, 국민의 판단을 구해야 한다.

이남주 | 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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