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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종교를 갖고 있지 않다. 그런 내가 종교기관을 상대로 한두 건의 재판을 대리한 것은 아직 좀 어색한 일이다.

한 사건은 2019년 감리회 소속 이동환 목사가 제2회 인천퀴어문화축제에서 축복식을 진행하였다는 이유로 징계절차에 회부된 교회재판이다. 목사로서 성소수자를 축복한 것이 감리회 교리와 장정에서 징계사유로 규정한 ‘동성애 찬성·동조’에 해당한다는 것이 기소 이유였다. 3년간의 긴 재판을 거쳐 지난 10월 감리회 총회 재판위원회는 이동환 목사에게 정직 2년의 징계를 내렸다.

다른 한 사건은 2018년 5월17일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에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학생들이 무지개색 옷을 입고 채플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은 사건이다. 학교 측은 학칙을 무리하게 적용해 학생들을 징계했고, 징계무효확인판결도 내려졌지만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손해배상 소송까지 한 끝에 최근 서울고등법원은 학교가 학생들의 학습권 침해 등 불법행위를 하였다고 인정하였다.

교회재판과 사회재판, 감리회와 장로회, 목사와 신학대학원생, 두 사건의 성격은 사뭇 다르지만 쟁점은 사실상 동일하다. 성소수자 차별과 혐오에 반대하며 모든 이들의 평등과 존엄을 이야기한 것이 징계 사유가 될 수 있냐는 것이다. 성소수자와 동료시민으로서 함께 연대하고 환대하려는 마음을 벌할 수 있는가, 두 재판을 통해 확인받고 싶은 것은 그 하나뿐이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재판의 상대측에서도 성소수자 차별에는 반대한다고 이야기한 것이다. 장신대는 징계무효확인소송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은 동성애자를 포함한 그 누구도 차별과 배척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을 원용했다. 이동환 목사를 고발한 감리회 목사들 역시 보조참가인으로 재판에 참석하여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에는 자신들도 반대한다고 이야기했다.

당연한 일이다. 특정 개인, 집단을 차별하고 배척하는 것을 옹호한다면 보편종교로서의 기독교는 성립하지 않았을 것이다. 교리와 신앙을 떠나 차별과 혐오에 반대하는 것은 민주사회의 시민으로서도 당연한 의무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끝내 이동환 목사의 정직 2년을 확정하고 나아가 재판비용까지 부과한 감리회와, 4년간의 소송 끝에도 학생들에게 결코 사과를 하지 않은 장신대를 보며 묻지 않을 수 있다. 대체 종교의 역할은 무엇인가.

갤럽조사에 따르면 한국에서 종교인 비율은 계속 줄어들어 작년에는 성인 종교 인구가 40%, 즉 절반 이하로 나타났다. 종교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도 ‘요즘 종교는 우리 사회에 도움을 준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38%에 불과했고, 특히 비종교인은 82%가 부정적 응답을 하였다. 이를 두고 교회언론에서는 한국 교회의 위기라는 말들이 종종 나온다.

하지만 비종교인인 나는 오히려 종교의 의미를 느낄 때가 많다. 퀴어문화축제에서 성소수자를 축복하며 뿌려진 꽃잎, 모든 차별에 반대하며 펼쳐진 무지개, 사회적 소수자와 함께하는 목탁과 오체투지의 현장,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며 4대 종단이 함께하는 기도회가 바로 그러한 순간들이다. 소수자를 배제하고 누군가를 단죄하는 그 오만함이 아닌 자비와 사랑, 연대와 환대를 이야기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위기를 넘어 현대 사회에서 종교의 가치와 의미를 드러내는 일이 아니겠는가.

마침 이 글을 쓰는 20일은 트랜스젠더 추모의날이다. 떠나간 친구들을 기억하고 애도하며, 동시에 신앙을 통해 혐오와 차별에 맞섰고 지금도 싸우고 있는 이들의 마음이 온전하게 존중받기를 바라며, 크리스천 퀴어-엘라이 운동 단체 큐앤에이의 ‘트랜스젠더 추모의날 주일 기도문’ 한 구절을 인용해 본다. “하나님, 하나님이 귀히 여기시고 우리가 사랑한 우리의 친구입니다. 그가 당신 곁에서 자신이 원하는 모습 그대로 행복하기를 기도합니다.”

<박한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

 

 

연재 | 지금, 여기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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