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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 중국전문가
춘추시대 진나라 영공은 한때 개인의 향락을 위해 막대한 비용과 인력을 동원하여 9층짜리 호화롭고 거대한 건물을 짓게 했다. 누구든 이 일과 관련하여 이러쿵저러쿵 말하면 죽이겠다는 무시무시한 엄포까지 놓았다. 그런데 3년이 지나도록 완공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신하들은 영공의 기세에 눌려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순식(荀息)이란 대신은 이런 상황을 그냥 넘길 수 없어 영공에게 면담을 요구했다. 순식이 무슨 말을 할지 알고 있던 영공은 활에다 화살을 팽팽하게 매겨놓고는 순식을 기다렸다.
영공을 만난 순식은 유쾌한 표정을 지으며 “대왕, 제가 대왕을 즐겁게 해드리기 위해 재미난 재주를 하나 보여드릴까 합니다”라고 말했다. 예상치 못한 순식의 말에 영공은 마음을 풀었다. 순식은 싱글벙글 웃으며 “제가 바둑알 열 개를 쌓은 다음 그 위에 다시 달걀 몇 개를 올릴 수 있는 재주가 있는데 보시렵니까”라고 했다. 영공은 “어, 그런 재주라면 재미있지” 하면서 활을 한쪽으로 치우고 바둑알과 달걀을 가져오라고 명을 내렸다.
순식은 진지한 표정으로 바둑알 열 개를 쌓아 올린 다음 달걀을 그 위에 올리기 시작했다. 구경하던 사람들은 바둑알이 하나하나 쌓일 때마다 손에 땀을 쥐었다. 영공도 마찬가지였다. 달걀이 올라가면서 바둑알들이 흔들리자 영공은 손을 내저으며 “위험하다, 위험해!”라며 연신 목소리를 높였다.
(경향신문DB)
순식은 “이 정도 가지고 뭘 위험하다고 하십니까. 이보다 더 위험한 일도 있는데요”라며 정색을 했다. 영공은 놀란 얼굴로 “아니 이보다 더한 재주가 있단 말이오? 어디 한번 보여주시오”라며 순식을 재촉했다. 때가 되었다고 판단한 순식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대왕께 아룁니다. 지금 9층짜리 호화스러운 집을 짓기 위해 3년이란 시간과 돈 그리고 막대한 인력을 들이고도 완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가다간 나라가 망할 판입니다. 그렇게 높고 호화로운 집을 짓는 일이야말로 바둑돌 위에 달걀을 올리는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한 일 아니겠습니까. 영명하신 대왕께서는 이 일을 깊이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
말을 마친 순식은 옷소매로 눈물을 훔쳤다. 순식의 진솔한 충고와 간절한 태도에 영공은 잘못을 깨닫고 바로 그 자리에서 공사 중단을 명령했다.
자칫 나라에 엄청난 피해를 줄지 모르는 무시무시한 일을 저질러 놓고도 자화자찬으로 일관하는 우리의 지도자를 보면서 새삼 ‘누란지위(累卵之危)’의 고사를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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