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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이 현행 당헌·당규대로 오는 8월20일 전당대회를 열어 대선 후보를 선출한다는 방침을 확정했다. ‘비박(근혜) 후보’ 3인이 요청해온 전대 연기를 거부한 것이다. 당 지도부는 이들이 함께 요구해온 완전국민경선제 등 경선 규칙 변경에 대해서도 “(후보등록 마감 전날인) 내달 9일까지 논의를 계속한다”고 여지를 남겼으나 이 역시 물 건너갔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비박 3인의 주장을 수용하려면 전국위원회 등을 열어 당헌·당규를 바꿔야 하는 등 시간이 필요한 만큼 전대를 연기하지 않고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로써 새누리당의 대선후보 경선은 ‘반쪽짜리’로 흐를 공산이 커졌다.
경선 룰 조정회의 참석한 황우여 대표 (경향신문DB)
주목해야 할 것은 박 의원의 뜻이 관철된 결론이 안고 있는 문제보다 여기에 이르는 과정과 절차에서 드러난 흠결이다. 완전국민경선을 실시하려면 시간이 촉박하고, 역선택이나 돈선거의 위험이 있는 데다 정당정치의 원리에도 어긋난다는 박 의원 측 주장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 비박 3인이 겉으로 국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내세우지만 그 이면에는 어떻게든 자신들에게 유리한 규칙을 만들고자 하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자신의 주장이 아무리 옳다고 하더라도 다른 주장을 펴는 상대와 제대로 된 대면이나 협상 한 번 없이 결론을 내려버린 데 있다. 그동안 박 의원이 공개적으로 내놓은 언급이라곤 “선수가 룰을 바꿔서는 안된다”는 한마디가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같은 당’ ‘한 식구’라는 말이 무색할 지경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박 의원의 일방통행에도 불구하고 다른 목소리는 찾아보기조차 힘든 당내 분위기다. 친박 인사들이 국민의 눈길을 끄는 흥행보다 정책이 우선이라는 만용을 부리고, 불과 몇 %대 후보들을 위해 경선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는 주장을 내놔도 이를 반박하는 인사들이 없다. 이 중에서도 75명에 달하는 초선 의원들의 침묵은 심각한 수준이다. 그들이 왜 ‘박근혜 키즈(Kids)’로 불리는지 알 것 같다. 심지어 한 핵심 측근은 “이번 결정이 박 의원의 이미지 손상을 가져올 것이라는 지적이 있지만 잠시이고, 후보로 결정되면 모든 게 지난 일이 되고 말 것”이라고 했다는 데 일국의 지도자를 꿈꾸는 이를 보좌할 자격이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일련의 과정에서 이명박 정권의 대표적 폐해로 지적돼온 ‘소통 단절’의 또 다른 이미지를 본다. 정치는 ‘모 아니면 도’의 게임이 될 수 없다. 얻기 위해서는 내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 정치에서 결과 못지않게 절차를 중시하고, 대화와 타협의 기술이 요구되는 이유다. 일방적인 승패의 게임은 전쟁의 법칙이지 정치의 영역이 아니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비효율적이다. 박 의원은 원칙의 정치인을 자처한다. 불신과 훼절이 일상화한 정치의 현실에서 더없이 소중한 덕목이다. 하지만 상대에 대한 배려 없는 원칙 고수는 오만과 독선만큼이나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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