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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서 경험한 두 가지 에피소드. 토론토에는 대형 한국식품점이 몇 개 있다. 고객과 직원 대부분이 한국 사람이고 영어 쓸 일이 없으니 식품점 분위기는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다. 어느 날 물건을 하나 들고 계산대 앞에 줄을 섰는데, 갑자기 큰 소리가 들렸다. “새치기하지 마세요.” 깜짝 놀라 돌아보니 내 뒤에 있는 사람이 나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 조금 전 그 사람은 무엇을 빠뜨렸는지 자기 수레를 내 뒤에 두고 매장 안으로 급히 들어갔었다. 계산대 앞으로 돌아온 그는 내가 자기 앞에 끼어든 걸로 착각했다.

창졸간에 새치기꾼이 되어버린 나는 “새치기 아닌데요?”라고 항변했다. 계산대 직원이 개입해 확인해주었기 망정이지, 나는 처음 보는 사람과 소리 높여 싸움을 할 뻔했다.

캐나다 TD은행에는 ‘비즈니스 서비스’라는 창구가 있다. 비즈니스 계좌를 가진 자영업자들을 배려해 따로 만든 창구이다.

언젠가 내 비즈니스 계좌에서 출금을 하려고 그 창구로 갔다가 난데없는 봉변을 당할 뻔했다. 일반 창구 앞에 줄을 섰던 중년 백인이 다가오더니 소리를 질러댔다. 그이도 내가 새치기한 것으로 오해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가만 들어보니 그의 말은 “왜 새치기를 하느냐?”가 아니었다. “왜 새치기하는 것을 그냥 두고 보느냐?”였다. 그러니까 지적과 항의는 나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그이는 나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비즈니스 창구 직원에게 거칠게 항의했다. 내가 당사자이긴 했으나, 항의를 받고 말싸움을 벌인 사람은 은행 직원이지 내가 아니었다.

지난 9월5일 서울 강서구 탑산초등학교에서 열린 ‘강서지역 특수학교 설립 교육감-주민 토론회’ 소식이 언론과 SNS를 타고 널리 알려졌다. 이 토론회가 주목받은 까닭은 장애학생 학부모와 지역 주민들이 맞닥뜨렸기 때문이다. 학부모들은 주민들을 향해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지 말아 달라”고 했고, 지역 주민들은 “특수학교 대신 국립한방병원을 짓게 해달라”고 했다. 두 목소리가 충돌하자 학부모들이 무릎을 꿇었다. 주민들도 따라 꿇었다.

언뜻 보기에 당사자들끼리의 ‘토론’이자 ‘대화’일 수도 있겠으나, 따지고 보면 문제 해결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만남이다. 당사자들이 얼굴 맞대고 언성을 높이면 해결은커녕 서로 감정만 상하고 문제는 더 악화하기 십상이다. 가령 식당 옆자리 사람들이 소란을 피우거나, 아파트 위층에서 쿵쿵 소음을 내거나, 기내에서 이어폰 끼고 큰 소리로 노래 부르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 피해 당사자인 내가 다른 당사자에게 직접 지적을 하면, 서로가 불쾌해질 수 있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은행의 백인 고객처럼 직원에게 문제를 지적하고 해결을 요청하는 것이다.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 문제도 마찬가지다. 학부모와 지역 주민들이 왜 서로를 향해 호소하고 야유까지 해가며 얼굴을 붉히고 무릎을 꿇어야 하는가. 주민들에게 한방병원 설립이라는, 법적으로 되지도 않는 일을 약속한 사람은 그 지역 국회의원 김성태이다. 특수학교 설립을 추진하는 주체는 서울시교육청이다. 주민들은 자기네에게 공약한 김성태 의원에게 “약속을 지키라”고, 학부모들은 서울시교육청에 “예정대로 추진하라”고 요구하면 그만이다. 토론을 하든 싸움을 하든 김성태 의원과 서울시교육청이 붙어서 할 일이다. 그들이 ‘관계 직원’이다. 직원 대신 양 당사자가 맞붙어 갈등하면, 문제는 다른 쪽으로 비화할 수도 있다. 정작 책임져야 할 사람은 “당신들끼리 싸워라” 하고 그 사안에서 슬쩍 빠져나갈 수도 있다. 토론회장에서 김성태 의원이 중간에 빠져나갔듯이 말이다.

아무리 올바른 지적이라 해도 당하는 사람을 기분 나쁘게 할 수 있다.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감정싸움을 할 것인가. 싸움이 목적이라면 매너 따위는 필요 없고.

<성우제 | 재캐나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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