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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에 누워 책을 읽는데 도무지 집중이 되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스마트폰으로 손이 향했다. 예전 같으면 이불을 뒤집어쓰고 어떻게든 잠들기 위해 애썼겠지만, 스마트폰이 생긴 이후에는 통제가 잘되지 않는다. SNS에 접속하니 이렇게 묻는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요?” 어딘가에서 분명 거대한 일이 벌어지고 있을 지금, 고작 잠들기 위해 버둥거리고 있는 나 자신이 우습고 처량하게 느껴졌다.
글들을 죽 읽어 내려다가 사진 한 장에 눈이 가닿는다. 눈이 말똥말똥해진다. 수면은 지연된다. 내일 아침부터 부리나케 치러야 할 일들은 자발적으로 망각된다. ‘축구공으로 변신한 고양이’란 제목을 단 사진은 이미 만 차례가 넘게 공유되고 있었다. 사진 속에서는 하얀 바탕에 검은 점이 난 고양이가 몸을 동그랗게 말고 앉아 있었다. 얼룩무늬가 만들어내는 절묘한 순간에 무릎을 탁 쳤다.
(출처:경향신문DB)
내친김에 검색창에 고양이를 입력해보았다. 사람들이 SNS에 올려놓은 고양이 사진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것은 분명 파노라마였다. 변화와 굴곡이 많은 이야기처럼, 고양이들은 하나하나 다 달랐다. 이 고양이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가 저 고양이를 보고 폭소를 터뜨렸다. 굳이 매력을 뽐내지 않아도 충분히 주목받을 수 있다는 걸 안다는 듯, 바닥에 가만히 앉아 있는 고양이도 있었다.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귀여워.”
언제부터인가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나는 귀여운 것을 찾고 있었다. 그것이 일을 근본적으로 해결해주거나 일에서 벗어나게 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여운 것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머리와 양어깨를 짓누르는 부담이 좀 가시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을 플라시보 효과라고 폄하하듯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플라시보 효과면 어떤가. 귀여움 덕분에 잠시 동안 환히 웃을 수 있었는데.
“귀엽다”라는 말도 일상에서 더욱 빈번하게 사용하는 것 같다. 뭔가 좋은 것, 다시 보고 맡고 듣고 싶은 것이 있을 때마다 나는 ‘귀엽다’라는 형용사를 사용하고 있었다. 귀여움은 으레 사랑스러움을 동반하고, 이 사랑스러움은 관계를 끈끈하게 만들어준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사람에게서 의외의 면을 발견했을 때, 나는 그 사람도 귀엽고 그것이 발견되던 순간도 귀엽게 느껴졌다. 그 사람 안에 더 많은 귀여움이 존재할 것이라 생각하니 덩달아 기분도 좋아졌다.
힘들 때 고양이 사진을 들여다본다고 고백하니, 한 친구가 그럴 때 고작 귀여운 것이나 보느냐고 타박했다. 위로가 필요할 때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을 테지만, 나는 귀여운 것이 좋다. 귀여운 것은 현실에 나를 붙잡아 놓되, 공중에 한 1㎝쯤 떠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내가 귀여워하는 것들을 헤아려보니, 하나같이 투명하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투명하다는 것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섣불리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마음을 사로잡으려고 환히 웃는 사람보다는 자신도 몰랐던 어떤 표정을 짓는 사람이 귀엽다. 형식을 잘 갖춘 이메일보다는 삐뚤빼뚤해도 자신의 마음을 한 자 한 자 적어 내려간 손편지가 귀엽다. 강아지가 다가갈 때 짓는 아이의 표정, 생전 처음 마주한 음식을 맛보자마자 찌푸려지는 미간이 귀엽다. 대화 도중 난데없이 튀어나오는 사투리, 가위바위보를 할 때 가위를 낸답시고 손가락을 세 개 내미는 실수가 귀엽다. 그리고 귀여운 것을 마주하고 기뻐할 수 있는 마음은, 아직 괜찮다.
귀여움은 ‘또’라는 상태를 염원하게 만든다. 또 보고 싶고 또 만나고 싶은 것이다. 어제 길에서 만난 고양이를 오늘 또 마주친다고 해서 귀여움이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귀여움은 달아나거나 닳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득 귀여움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튀어나올 수 있는 어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귀엽다”라는 말 또한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해줄 수 있는 커다란 칭찬이다. 세월의 흐름에도 아직 ‘나’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귀엽다. 좋아하는 것을 떠올리며 해맑게 웃는 사람들이 귀엽다. 밤하늘이 외롭지 않게 총총 떠 있는 별들처럼.
<오은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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