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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글을 쓰면서 대리운전 애플리케이션을 활성화시켜 둔다. 근처에서 콜이 나오면 대리운전을 하고, 그 지역의 24시간 카페 같은 곳을 찾아 다시 글을 쓴다. 매번 그러는 것은 아니고 마감 때문에 바쁘면 꺼두기도 한다. 그래도 그런 식으로 옮겨 다니다 보면 커피값은 나오고 현금을 구경할 일도 생기고 하는 것이다. 며칠 전에는 써야 할 글이 많아서 정신이 없었는데 무언가 거부할 수 없을 만한 콜이 나왔다. 출발지가 가깝고 목적지도 번화가이고 무엇보다도 단가가 좋았다. 그래서 노트북을 덮고 일어났다.

운전하는 동안 중년의 남녀는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 무척 좋은 차여서 오후 10시의 올림픽대로를 빠른 속도로 달렸다. 그러던 중, 여성이 남성에게 “내가 살아보니까 돈은 별로 중요한 게 아니더라”라고 말했다. 그때까지 조곤조곤 말을 주고받던 그들은 그 이후로 한동안 침묵했다. 남성은 아무래도 동의하지 않는 듯했다. 그 말은 어디에 가서 닿지 못하고 차의 여기저기를 맴돌다가 사라져 버렸다. 내가 뭐라고 답할 처지는 아니었지만 민망했다.

그가 만약 나에게 그 말을 건넸다면, 나는 아마 “네, 그럼요 선생님, 맞는 말씀입니다”라고 답했을 것이다. 대리운전을 하는 동안에는 대답(경청), 동의(동조), 칭찬(치사)만을 주로 하게 된다. 굳이 손님의 심기를 거슬러서 좋을 것이 없다.  물론 손님이 진심으로 나를 대한다면 나도 그에 따라 한 개인으로서 발화하게 되지만 그런 일이 자주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와 내가 서로 통제하고 검열할 것 없는 공간에서 만났다면, 나는 그의 말을 받아 다음과 같이 답했을 것이다. “아뇨, 돈보다 중요한 것들이 많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는 말 못하겠습니다.”

나는 중년인 그만큼 오래 살아보지는 못했지만, 살아보니 돈은 아주 중요한 것이다. 숨을 쉬고 살아가는 데도 필요하고 조금 더 행복하고 싶은 여러 순간마다 간절해진다. 내가 그 밤에 타인의 차를 운전하는 것은 어떻게 포장하더라도 결국 돈 때문이다. 운전을 마친 나는 주변의 24시간 카페로 갔다. 가장 저렴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하고 다시 노트북을 열었다.

출처:경향신문DB

며칠 후 나는 페이스북에서 20대 청년이 남긴 글을 보고, 다시 “돈은 별로 중요한 게 아니더라”라는 말을 떠올렸다. ‘조각난 언어들’이라는 문학 관련 영상 콘텐츠를 만드는 김현우씨는 다음과 같은 개인적인 글을 썼다.

“조각난 언어들 예루살렘 에피소드가 역대급으로 잘나가서 기분이 좋다. (…) 다만 매주 저런 거 한 편씩 만들라 하면 절대 못해… 차라리 누가 돈 수천 단위로 꽂아주고 현지 코디네이터 붙여줘서 한 달 체류하며 팔레스타인 문학 다큐 찍어 오라면 하지….”

러시아문학 전공자인 그는 141개의 문학 콘텐츠를 만들어서 유튜브에 올렸다. 외국의 최신 문학비평을 원서로 직접 읽고, 공부하고, 번역하는 것은 그가 가진 능력이고, 그것을 “남아공을 뒤흔든 93년생 페미니스트 시인” “지금 러시아에서 가장 핫한 젊은 소설가 중 한 명을 소개합니다!”라고 가공해내는 것은 그의 세대가 가진 감각이겠다. 나는 그의 글에 다음과 같이 화답했다.

“누가 저 ‘시건방진’ 청년에게 은행계좌를 물어보고 원하는 만큼의 돈을 채워주고 ‘팔레스타인에 가서 잘 놀다가 와’ 하고 쿨하게 말해 주면 좋겠다.”

김현우씨는 “혹시 선생님 주변에 처치곤란인 수천만원이 있는 분이 계실지 모르니, 제가 꼭 해보고 싶은 로케 촬영에 대해 말씀드릴게요” 하고는 긴 댓글을 남겼다. 유쾌하면서 동시에 간절한 것이었다. ‘문학이란 인간의 목소리를 전하는 것’이라고 믿는 그는 이제 ‘예멘 난민 문제’에 관심이 있다고 한다. 제주 예멘 난민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수기를 제작해서, 당사자의 목소리가 사회적으로 전파될 기회를 마련하고 싶다고 한다. 난민이라는 단어에서 목소리를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그들을 언어를 잃은 존재로 쉽게 상상하기 때문이다. 그가 ‘예멘 난민 작가의 자기 경험에 기반한 서사’라고 해서, 나는 그건 정말로 문학이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돈은 별로 중요한 게 아니더라”라고 말했던 ‘그’에게 그 중요한 ‘별것’이 무엇인지 묻고 싶다. 그가 김현우씨와 같은 이들에게 투자해주면 좋겠다. 엔젤투자라면서 언젠가 수십배가 되어 돌아올 복권을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말을 증명하기 위해 주변을 둘러봐주면 좋겠다. 그게 자산가들의 사회적 의무는 아니겠지만, 그런 멋진 말을 하려면 그만 한 책임을 져야 하는 법이다.

김현우씨와 그를 닮은 청년들이, 누군가에게 처치곤란인 돈을 충분히 투자받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나도 예멘 난민 작가의 글이 궁금하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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