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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를 하던 중 우연히 타임라인에 광고가 하나 흘러들어왔다. 정치스타트업을 표방하는 어느 사이트의 광고였는데, 해결되지 않는 삶의 문제들을 쇼핑하듯 편하게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어떻게 그런 신묘한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살펴봤더니, 자신들이 제작한 ‘굿즈’를 구매하면 판매기금을 모아서 옥외광고를 하거나, 관련 상임위의 국회의원에게 입법청원을 하겠다는 것이 골자였다.

사실 이것이 최초는 아니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 진영은 “헌정 사상 최초! 정당 사상 최초!”라는 말과 함께 ‘문재인 1번가’라는 쇼핑몰페이지를 운영한 바 있다. “지역, 세대, 관심사에 따라 필요한 정책 공약을 ‘쇼핑’ ”하라는 말과 함께 후보의 공약들을 쇼핑몰 상품처럼 배치했다. 물론 이것은 실제로 정책과 공약을 사고파는 쇼핑몰은 아니었고, 캠프의 ‘재기발랄’한 홍보담당자들이 내놓은 아이디어였을 것이다.

이 구상들은 대중이 정치를 어려워하기 때문에 진입장벽을 낮춰서 더 많은 사람들이 정치적 의사표현을 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민주주의에 대한 선의를 기반으로 한다.

하지만 따져볼 문제들이 많다. 우선 더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는 것은 민주적인가? 활발히 가동 중인 ‘청와대 국민청원’ 페이지를 보자. 20만명이 넘으면 청와대 및 담당부처의 관계자가 해당 청원에 대한 응답을 해준다. 그렇게 20만명을 넘긴 청원들의 면면은 상당히 당혹스럽다. 가장 많은 71만명이 한국에 난민들이 들어오지 않도록 해달라는 청원에 동의를 했고, 그 다음으로 6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문제를 일으킨 국가대표 선수들의 자격을 박탈해 달라는 청원에 동의를 했다. 그 외에도 청소년 범죄에도 성인과 똑같은 처벌을 해달라는 청원, 성범죄 사건에 대한 무고죄를 강화해달라는 청원, 퀴어축제를 금지해달라는 청원 등이 20만명을 넘겼다. 소수자의 인권을 옹호하는 청원이나 필요한 문제제기들도 있었다곤 하지만, 헌법이나 기본권에 반하는 주장들이 분별없이 노출되고 그것이 국가가 직접 응답해주어야 하는 여론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결국 이 청원 시스템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답변이라는 것이, 언제나 두루뭉술한 원론을 확인하는 것뿐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더 의문을 갖게 된다.

정치적 의사표현을 쇼핑처럼 하라는 말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자. 물론 소비는 오늘날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장 많이 빈번하게 하는 행위이자, 사회와 관계 맺는 가장 보편적인 방식이다. 모든 것이 시장과 거래행위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같이 보이는 오늘날 정치가 소비가 된들 무엇이 달라지느냐고, 이미 그렇지 않느냐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실로 경제학에 기반하여 정치행위를 분석하려는 이론들이 꽤나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

하지만 소비는 아주 제한적인 행위다. 소비는 값을 지불해야만 자격을 얻는다. 사지 않는 것과 살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관여할 수 없다. 돈과 자원도, 많은 수의 머릿수도 없는 이들의 목소리를 위한 시장은 열리지조차 않을 것이다. 편의점에서 특정 회사의 유제품을 사지 않는 것은 비교적 쉬운 일이지만, 대기업이 만든 도로와 아파트와 반도체와 국가기반시설을 불매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어떻게 지지하지 않는 정당과 종교를 불매할 것인가? 자연재해를 구매하거나 불매해서 대처할 수 있을까? 약자들의 권리와 사회정의는 어디에 가면 살 수 있나?

길바닥과 허공에서 세상에 자리를 얻기 위해 발버둥쳤던 사람들을 떠올려보면, 민주주의와 편리함의 주객전도가 다소 모욕처럼 느껴진다. 그들이 처절하게 증언했던 바는 민주주의는 ‘좋아요’와 ‘구매하기’로 작동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쉽고 간편한 민주주의는 없다. 우리는 충분히 더 복잡하고 신중해져야 한다.

<최태섭 문화비평가·<잉여사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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