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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이더리움’이라는 가상화폐를 샀다. <사람은 왜 노동하는가>라는 제목의 책을 쓰고 있는 요즘, 그 질문에 도저히 답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대학생과 중·고등학생들까지 주로 가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일해서 뭐해, 출근하는 것보다 비트코인 사면 돈을 더 버는데” 하는 내용의 글이 매일 올라온다. 해외에서 가상화폐를 사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팔고 15~30%의 이상한 환차익을 보는 원정대도 생겼다고 한다. 그 어느 때보다도 노동이 조롱받는, 그 가치에 대해 제대로 답할 수 없는 시대가 왔다.
정부가 충분한 협의와 의견조율을 거쳐 가상통화 거래소 폐쇄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힌 15일 서울 중구의 한 가상통화 거래소 전광판에 비트코인 등 가상통화 시세가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
“일 진짜 왜 하냐 ㅋㅋㅋ” 하는 어느 고등학생의 게시물을 보고는, 글쓰기를 멈추고, 가상화폐 계정을 만들었다. 문학 공부만 해온 내가 가상화폐에 말을 보태는 것은 의미 없는 ‘꼰대의 한마디’가 될 테고 우선은 그 입장이 되어 보기로 했다. 휴대폰 화면을 보며 “가즈아!” 하고 외치는 그들을 이해해 보려면, 직접 사는 것 말고 별 방법이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책을 계약하며 받은 인세보다 조금 많은 돈을 이더리움을 사는 데 썼고, 처음으로 ‘화폐’에 대한 공부도 조금 했다. 인세라 봐야 얼마나 되겠냐만, 나에게는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그래도 신경이 쓰일 만큼의 돈을 넣어두어야 할 것 같았다. 왜 이더리움이었느냐고 하면 ‘비트코인’을 비롯해 ‘리플’ ‘이오스’ ‘퀀텀’ 등등, 많은 가상화폐들이 있었지만, 그 이름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친분이 있는 어느 기자도 이름이 예뻐서 이더리움을 선택했다고 해서, 둘이 같이 한참을 웃었다.
저녁에 140만원을 주고 산 1이더리움은, 자기 전에 보니 150만원이 되어 있었다. 이러다 의도치 않게 큰 수익을 내는 건 아닌가, 하고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잠들었다. 아침이 되니 1이더리움은 100만원까지 떨어져 있었다. 그러니까, 그 몇 시간 사이에 30%가 넘게 움직인 것이다. 며칠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하던 이더리움은 지금 120만원이 되었다. 그러는 동안 노동에 대한 감각은 자연스럽게 옅어졌다. 내가 글을 쓰든 강연을 하든, 대리운전을 하든, 그 노동의 대가보다 많은 금액이 시간 단위로 움직이는 것을 보니 정말로 조금은 기운이 빠지는 것이었다. 이익이 나면 나는 대로, 손해를 보면 보는 대로, ‘일해서 뭐하나…’ 하는 심정이 되었다. 아마도 가상화폐에 투자한 이들이 거의 이런 감각을 공유하고 있지 않을까, 한다.
이것은 별로 ‘투자’라고도 ‘노동’이라고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공부하며 알게 된 가상화폐의 가능성은 무척 멋진 것이지만, 1비트코인의 적정한 가치가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에는, 아마 누구도 답할 수 없을 것이다. 스스로 공부하고 감당할 만한 돈을 투자하는 것은 어느 형태의 노동이 된다. 그러나 “이름이 멋져서 남들 따라 그냥 샀다”고 고백하는 식의 가상화폐 투자는, 아무래도 자기 자신과 이 사회를 갉아먹는 행위가 될 뿐이다. 나도 거기에 일조했으니 반성을 해야 한다.
물론 우리 사회가 그동안 노동과 노동자에 대한 대우를 제대로 해 주었는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젊은 세대는 노동이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는 것을 보며 자라왔다. 그들이 가상화폐에 열광하고 그것을 신분상승을 위한 ‘유일한 동아줄’로 표현하는 것은, 사회가 가진 구조적 문제에서도 기인한다. 그러나 그것이 등록금을 끌어오거나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어 가상화폐를 사는 것에 대한 핑계가 될 수는 없다. 무엇보다도, 건강한 노동을 해나가는 이들을 조롱해서는 안 된다. 모든 노동은 서로 촘촘히 맞닿아 있다. 개인의 생계를 위한 그 행위들이 모여 우리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곧, “사람은 왜 노동하는가?”에 대한 답을 근본적으로 새롭게 해야 할지 모른다. 가상화폐 이전과 이후의 노동의 가치는 많이 다를 것이다. 나는 책을 다 쓰는 6월까지는 이더리움을 산 돈을 조신하게 그대로 두기로 했다. 해킹을 당해 계정이 없어질 수도, 마이너스 100%에 가까운 손해를 볼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어쩌면 ‘가상화폐, 저만큼만 하면 됩니다’ 하는 제목으로 바꾸어 책을 출간하게 될 수도 있겠다. 그 과정에서 나름의 답을 낼 수 있기를 바란다.
가상화폐를 산 당신도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가즈아” 하고 외치며, 마음 한편에서 ‘나는 왜 노동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조금씩 커져갈 것이다. 그에 대한 고민을 함께 시작하면 된다. 원화를 채굴하는 평범한 노동자들에 대한, 우리 스스로의 노동에 대한 인식과 대우부터 달라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가상화폐 그 이후가, 너무나 참혹할 것이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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