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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만원. 최저임금을 받는 20대 후반 직장인의 2017년 가계부에서 확인한 월급이다. 세 명의 사례를 조합한 것이라 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세전 월급은 138만원, 연봉으로 환산하면 1600만원대다. 아무리 1인 가구라지만 한 달에 125만원으로 어떻게 생활하는지 궁금했다. 원룸 월세 및 관리비 40만원, 출퇴근 교통비 10만원, 통신비 10만원, 점심 포함 식비 30만원, 학자금 대출 상환 20만원을 내고 나면 15만원이 남는다. 이마저도 집이 서울이 아니라 경기권이어서 가능한 액수다. 집과 회사만 오가며 그야말로 숨만 쉬고 살아도 100만원은 기본으로 필요하니, 경조사가 있거나 병원에 가야 하는 일이 발생하면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다. 친구를 만나려고 해도 나가서 쓸 돈이 없어서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자주 생기고, 여윳돈이 너무 없다보니 직장인임에도 불구하고 주변에 자꾸 손을 벌리게 된다며 민망해한다. 3년 가까이 사회생활을 했는데도 모아둔 돈이 전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 달에 2만원씩 넣던 청약저축마저 찾아 쓰고 난 후에는 저축을 하지 않고 있다는 사람부터 빚이 없는 게 어디냐고 반문하는 사람까지 저축을 포기했다는 점에서는 같았다. 올해 오른 최저임금에 기대가 크지만, 벌써부터 각종 꼼수가 난무하는 탓에 걱정이 많다.

야근을 밥먹듯 하는 남편에게 아이가 “아빠, 우리 집에 또 놀러오세요”라고 인사한다는 기혼자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결혼도 나을 게 없는 선택지다. 대부분 서비스업 종사자들이라 일상적으로 감정노동에 시달리다보니, 쉬는 시간에는 누군가를 만나는 것조차 부담스럽다. 연애는 물론이고 내 집 마련은 그야말로 비현실적인 남의 이야기일 뿐이다. 사진 등의 취미 활동을 업으로 삼으려는 생각도 해봤지만, 지금 생활조차 유지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포기했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가능성이 낮은 로또 대신 연금복권에 당첨되는 것이 가장 큰 희망이었으나, 요새는 비트코인 같은 가상화폐에 관심을 갖고 있다. 당장 돈이 없다보니 투자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지만 인터넷 대출이라도 받아서 투자하고 싶은 심정이라는 점도 같았다. 요새 ‘적은 급여와 평범한 삶에 만족하며 사는 사람들’이 뜬다는데, 한 달에 200만원이라도 안정적으로만 벌 수 있다면 자기들도 만족하며 살 수 있겠다고 입을 모은다.

중국의 소설가 위화는 사람들의 이를 뽑는 치과의사를 하다가 소설가가 된 것으로 유명하다. 모든 개인이 국가가 정해준 일을 하면서 매달 똑같은 월급을 받던 사회주의 시절 이야기다. 위화는 하루 종일 ‘손에 강철로 된 집게를 들고 매일 여덟 시간씩 사람들의 치아를 뽑았’고, 더 이상 이를 뽑지 않기 위해 글쓰기를 시작해 성공했다. 이후에 그는 “다른 점이 있다면 치과의사는 아주 힘든 가난뱅이고 문화관 직원은 아주 행복하고 자유로운 가난뱅이였다”고 회상했다. 그때 중국에서처럼 문화관 직원으로서 글을 쓰든, 사람들의 이를 뽑든 큰 차이 없이 행복하고 자유로운 가난뱅이로 살 수 있다면야, 나쁘지 않다.

하지만 한국에서라면 이런 선택은 불가능하다. 최저임금을 받으면서 2년마다 고용 불안에 떨어야 하는 사람들에게 가난은 선택이 아니라 벗어날 수 없는 굴레일 뿐, ‘행복하고 자유로운’ 가난뱅이란 불가능에 가깝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은 바로 이 불가능을 조금이라도 더 가능하게 만드는 일이 아닐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포자기 상태다. 2017 국민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개인의 노력을 통한 성공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74% 이상이 “보통 이하”라고 응답했다. 게다가 응답자의 87%는 “정부가 응답자 본인보다 상위 계층의 사람을 우대한다”고 답했다. 몇몇 운 좋은 사람들만이 ‘적게 벌어도 행복’할 기회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원한다면 그 누구라도 야근에 시달리지 않고, 적게 벌어도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면서 소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정부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행복하고 자유로운 가난뱅이’로, 성공하지 않은 ‘Nobody(아무나)’로 살아도 괜찮은 국가가 될 수 있도록 말이다. 중국이 개혁·개방으로 변화했듯 한국은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나요?”라는 질문에 영화로도 답할 수 있는 국가로 성장했다.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를 돌파한다는 2018년 새해, “세상이 바뀌었다는데 우리는 왜 이렇게 힘든가요?” 묻는 77만원세대에 답을 내놓을 때다.

<정지은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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