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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이 그 말일 수 있다. 피의자가 ‘진술을 거부’하거나 ‘진술거부권을 행사’했거나 검찰의 신문에 답하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다. 그러나 표현이 주는 뉘앙스는 차이가 있다. 진술을 거부했다는 표현은 ‘거부’를 부각시켜 수사에 협조하지 않았다거나 수사태도가 불성실했다는 부정적 의미를 떠올리게 만든다. 진술거부권을 행사했다고 말하면 보장된 권리를 행사한 것이어서 당연한 일을 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여 8시간 내내 진술을 거부하고 묵비권을 행사했다는 언론의 보도태도가 이처럼 양 갈래다. 부정적인 면에 초점을 맞춰 여론을 형성해 보려는 입장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는 입장이 대조적이다. ‘권력자의 갑질’이라는 표현을 제목으로 뽑거나 ‘검찰 수사에 성실히 응하기 바란다’는 야당 정치인의 멘트를 기사화한 언론은 수사태도에 문제가 있었다는 쪽이다. 이에 반해 헌법에 보장된 권리를 행사하는 데에는 전직 장관이든, 일반 시민이든 차이가 있을 수 없고 검찰에 대항할 수 있는 피의자의 유일한 무기라는 기사는 헌법과 원칙을 지켰다는 입장이다.   

일반인은 진술을 거부하면 검찰이 바로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영장발부사유가 된다는 법조인의 시각을 그대로 전달할 게 아니다. 그런 검찰과 법원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방점을 두어 보도해야 한다. 진술을 거부한다고 불이익이 가해지면 헌법상 보장된 권리는 유명무실해진다. 진술거부 자체로 영장청구하고 그것만으로 영장이 발부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술거부에 대한 사실상의 불이익이다. 기본권보장의 하향평준화를 요구할 게 아니다. 일반인이 감히 진술 거부할 엄두를 못 낸다고 일반인을 기준으로 권력자의 진술거부권 행사가 문제 있다고 본다면 헌법은 장식장의 장식품에 그치게 된다. 진술거부권은 피의자라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헌법상 기본권이다. 검찰 앞에서 진술을 거부한다는 것은 일반인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라면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밝혀야 한다. 검찰이 진술을 거부하는 일반 피의자에게 영장을 청구할 것이라든지, 재판에 가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든지 겁을 줬다면 검찰을 엄히 꾸짖어야 한다. 법원이 진술거부권을 행사했다는 이유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면 기본권 행사에 불이익을 가해선 안된다고 법원을 비판해야 한다. 기본권 행사에 공인을 들먹이거나 권력자의 특권이자 갑질이라고 비난해서는 안될 일이다.

헌법 제12조 2항에는 “모든 국민은 고문을 받지 아니하며,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고 적혀 있다. 검찰에 대항할 수 있도록 헌법이 피의자에게 쥐여준 무기가 바로 진술거부권이다. 권력자든, 일반 시민이든 피의자는 검찰이라는 거대한 국가권력에 비하면 한없이 약한 존재다. 그 무기마저 없다면 검찰의 권력 앞에 힘없이 주저앉을 수밖에 없다. 법정에 가서 다투어보겠다며 검사 앞에서 순순히 진술하면 엎지른 물이 된다. 검사의 신문에 진술해서 신문조서로 작성되면 법정에서 그 내용을 부인해도 증거능력이 인정되기 때문이다. 법정에 가서 판사 앞에서 아무리 그게 아니라고,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해도 소용없다. 진술의 신빙성을 스스로 깨버리는 결과가 된다. 검사 출신 국회의원이 변호사 시절 언론에 기고했던 ‘수사 잘 받는 법’을 보면 첫 번째가 ‘아무 말도 하지 말라’다. 적극적으로 진술해서 해명하는 것이 소송 전략적으로 나은 경우가 있을 수 있고, 아무 얘기도 하지 않으면서 묵비하는 것이 좋은 전략일 수 있다. 그래서 진술을 거부했다고 부정적으로 볼 것은 아닌 것이다.

피의자가 진술거부권을 행사한다고 하면 검사는 더 이상 신문을 포기해야 한다. 무의미하게 8시간을 잡아 놓고 질문공세를 펼 것은 아니다. 물론 검사는 이렇게 질문했는데 아무 답변도 하지 않았다는 내용의 피의자신문조서를 작성해 영장 청구하면서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음을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헌법상 보장된 권리행사가 구속영장을 발부할 사유로 사용된다면 이것이야말로 헌법상 기본권 행사에 불이익을 주는 것으로서 법원이 해선 안될 일이다. 진술을 거부했다고 불성실한 수사태도로 볼 것도 아니고, 진지한 반성이 없다고 양형에서 불이익한 사유로 고려돼서도 안된다. 형사소송법에도 진술거부권을 행사해도 아무런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니 진술거부권을 행사한 조 전 장관을 비난할 것이 아니라 일반 시민이 피의자로서 감히 진술거부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수사 환경과 관행을 문제 삼아야 한다. 진술거부권이 특권층이나 막강한 변호인단을 구성할 수 있는 피의자에게만 인정되는 현실이 비정상이고 반헌법적이라는 지적을 통해 진술거부권이 피의자 모두가 차별 없이 누릴 수 있는 권리가 되도록 해야 한다.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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