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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를 당했다. 인내심의 임계점에 달한 인사권자의 강력한 견제구이자 경고다. 이번 검찰인사를 두고 ‘자업자득, 수사방해를 위한 보복인사, 또 다른 길들이기’ 등 다양한 관점과 반응이 혼재한다. 그러나 지난 몇 개월간 국민을 갈라놓고 혼미하게 만든 검찰의 칼춤을 멈춰 세워야 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필요하고도 시기적으로 적절했으며 당위성 있는 인사권 행사다. 무소불위의 검찰을 독립성 보장이라는 이유로 통제하지 않는다면 이것이야말로 임명권자의 직무유기다. 검찰수사의 중립성을 위해 정치권력은 삼가고 절제해야 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비정상으로 내달리면 선출된 권력에 의한 적절한 민주적 통제는 불가피하다. 검찰의 독단을 막기 위한 최후 수단이다. 적폐수사로 날개 단 검찰은 검찰조직의 적폐청산에는 소홀한 채 수사·기소권을 무기로 개혁의 흐름에 역행했기에 부러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윤석열 검찰의 그간 수사를 되돌아보자. 가뜩이나 갈라진 대립과 갈등의 골을 격화시킨 장본인이 바로 검찰이었다. 시작은 대통령의 인사권과 국회 인사청문 절차를 무위로 만든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일가에 대한 수사와 전격 기소였다. 시기적으로 부적절했던 검찰의 정치개입은 시민을 서초동과 광화문으로 갈라놓았다. 공직자가 될 자격이 있는지 수사로써 정의 내리겠다며 정치검찰의 행태를 보인 것이다. 

그러나 실은 살아있는 권력의 ‘권력형 비리·범죄’가 아니었다. 대통령의 측근 중 최측근이었지만 그 권력과 자리를 이용한 것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견문발검(見蚊拔劍), 모기 잡으려 칼을 빼어 휘두른 것이다. 포괄적 압수·수색영장을 동원한 전방위 수사, 피의사실을 흘리며 언론을 등에 업은 망신주기 수사, 원하는 무언가가 나올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수사였다. 그러나 그 결과는 옹색하기 짝이 없었다. 헌법상 기본권도 무시되고 절차적 정의와 공정성도 지키지 않은 수사였다. 시작은 창대해 보였으나 그 끝은 미약했다. 쥐 한 마리 잡기 위해 온 나라를 들쑤신 꼴이다. 마구 칼날을 들이대 만신창이를 만들었다. 여기저기 찔러보고 아니다 싶으면 멈출 줄도 알아야 하는데 그러지도 않았다. 그러니 망나니의 칼춤에 비유되는 것이다.

검찰이라는 단어의 검(檢)은 검사한다는 뜻이지만 검찰을 흔히 칼 검(劍)에 비유한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다 움켜쥔 검찰은 사람을 찔러볼 수 있고 목숨을 좌우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칼로 표현된다. “검찰의 칼, 문 정부에 들이대다” “조국의혹에 칼 빼어든 윤석열 검찰” 등 언론의 기사제목에도 자주 등장한다. 함부로 쥐고 흔들거나 과하다 싶으면 ‘망나니 칼춤’이라고도 한다. 망나니는 사형을 집행할 때 죄인의 목을 베던 사람이다. 언동이 몹시 막된 사람을 비하하는 말이기도 하다. 어떤 의미로 쓰이든 부정적이다. 거기에 위험천만한 칼춤까지 붙었으니 극단의 비난조 표현이다. 망나니의 칼춤은 사형집행 전에 몸을 풀기 위함이라고도 하고 사형수가 죽음에 대한 공포를 이기도록 혼을 빼기 위함이라고도 한다. 어쨌거나 망나니로서 나름 임무를 충실히 완수하기 위한 몸짓인 것이다. 그러니 검찰의 마구잡이 권한 행사를 망나니 칼춤에 비유하는 것은 적절하지도 않다.

윤석열 검찰은 출범 이후 모든 걸 잃었다. 참담한 수사결과로 정당성도 얻지 못했고, 급기야 인사로 견제당하고, 공수처법과 검경 수사권 조정법안 등 개혁입법도 통과되었다. 이쯤 되면 조직과 상관 지키기에 마지막 남은 자존심을 걸 것이 아니다. 인사권에 대한 집단적 저항을 시도해서도 안된다. 국민 앞에 석고대죄하고 국민이 원하는 검찰로 변신하겠다고 다짐해야 한다. 참다못해 단행한 인사권자의 경고를 잘 읽어야 한다. 국민의 뜻인 검찰개혁에 저항하지 말라는 신호도 담겨 있다. 

인사 당했다고 권력 앞에서 칼끝을 멈춰 세워서는 안된다. 이제 출범할 공수처가 해야 할 일이지만, 살아있는 권력의 권력형 범죄와 부정부패에 칼날을 겨누라는 임명권자의 요구는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칙과 절차를 지키는 공정한 수사여야 한다. 헌법상 기본권을 보장하는 인권존중의 수사와 기소여야 한다. 언론에 흘리고 여론을 동원한 수사여서는 안된다. 마구 찌르고 끝장을 보는 수사가 아니라 잘못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멈춰 설 줄 아는 절제와 염치를 아는 수사여야 한다. 망나니의 칼춤처럼 자신의 본분과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인사권도 그렇고 수사·기소권도 더 이상 선을 넘어서는 안된다. 인사견제구는 경고 주기에 충분했다. 더 이상 항명, 감찰, 징계 운운하거나 검찰 중견 간부들을 내쳐서도 안된다. 양 칼이 자주 부딪치면 칼날은 무뎌지는 법이다.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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