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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발사고다!” 나도 모르게 이렇게 외쳤다. 2009년 5월23일 토요일 아침이었다. 조금은 느긋한 주말 기분에 젖어 침대에서 TV를 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알리는 자막이 떴던 순간의 기억이다. 평소에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단어였는데, 왜 이 말이 떠올랐는지는 모른다. 내가 학교에 몸담고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우리의 학교에는 선진국에 비해 안전 인프라가 한참 부족한 상태에서 연구에 대한 열정 하나만으로 밤을 새우며 실험하다가 사고를 당하는 일이 간혹 일어난다. 그 장면을 떠올린 것일까. 정당정치와 사회적 합의의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한 한국에서 정치개혁을 위해 단기필마로 분투하다가 마침내 목숨을 버린 그를 보며 폭발사고의 장면을 떠올렸을 것이다.

설명해야만 했다. 그가 왜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해야만 했다. ‘논두렁 시계’ 같은 가짜 설명 말고, 정치개혁을 시도한 전직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비극적 결말에 이르도록 하는 한국 정치의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설명하지 못한다면 이 땅에서 사회과학자라는 이름을 걸고 살아가는 것이 별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나 한 사람의 역량을 넘어서는 일이 될 것이 분명했다. 다음날 선배 정치학자 한 분을 만나 취지를 설명하고 뜻을 같이하기로 했다. 최종적으로 16명의 학자들이 1년간 노무현 정부를 연구했다. 1주기를 맞아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2011년 책이 출판되었다. 

원래 이 책의 제목은 ‘노무현 정부의 정치적 부검’이라고 하고 싶었다. 폭발사고를 연상케 한 섬광 같은 비극의 통보로부터 시작된 책의 취지에 걸맞은 제목이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책은 다른 제목으로 출판되었지만, 여전히 내 마음속에는 원래의 제목으로 남아있다. 책을 세상에 내놓고도 마음의 짐은 쉽사리 덜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이 내가 조용히 그를 애도한 나만의 방식이었다.

8년 만에 다시 열어보니, 이 책에 포함된 내 원고는 이렇게 끝을 맺고 있었다. “첫 번째 시도는 실패로 돌아간 것 같다. 두 번째 시도를 할 기회가 있을 것인지, 그리고 기회가 있다면 그 시도는 또 어떤 운명을 맞게 될지는 첫 번째 시도의 실패로부터 무엇을 배우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두 번째 시도를 할 기회가 있을 것인지조차 확신하지 못했었는데, 무심한 세월이 흘러 어느새 그 두 번째 시도가 진행 중이니 그걸 지켜보는 심정은 복잡하다. 그때와 지금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그때 나는 4대 개혁 입법의 실패로부터 세 개의 교훈을 도출했었다. 

첫째, 사회적 소수파 정권의 개혁 전략은 사회적 기득권 정권의 전략과 달라야 한다. 사회적 소수파 정권은 기업도, 언론도, 관료도 자기편으로 가지지 못한다. 기득권을 가진 야당은 굳이 ‘반격’하지 않는다. 그들은 소수파 정권이 절대로 넘을 수 없는 철옹성 안에 ‘주둔’하면서 적들이 지치고 분열하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그들의 철옹성은 안보와 성장이다. 자유한국당 지도부가 국회로 돌아와 ‘반격’하지 않고 종북타령이나 하면서 ‘주둔’하는 이유이다. 

둘째, 갈등의 전략을 고민하고 생태적 통제(ecological control)에서 벗어나야 한다. 갈등에는 야당을 상대로 하는 대외적 갈등과 당내에서 벌어지는 대내적 갈등이 있다. 철옹성 안에 주둔하기만 하는 적을 상대로 준비되지 않은 공격을 할 때마다 병사들은 지치고 마침내 대내적 갈등이 시작된다. 열린우리당이 여러 개의 계파로 갈라져 요란하게 갈등했다면, 지금의 민주당은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갈등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생태적 통제란 내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상대에게 너무도 분명히 알려주는 데서 시작된다. 그러면 상대방은 내가 뻔히 밟아나갈 길목만 차단하면 쉽게 나를 통제할 수 있다. 과거 한나라당은 4대 개혁 입법의 본질에 대해 아무런 정면 대응을 하지 않았다. 그냥 장외집회를 이어가면서 경제를 망가뜨리고 북한에 종속된다는 거짓 선동만 되풀이했을 뿐이다. 결국은 경제와 안보라는 길목을 거쳐가지 않을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셋째, 현실 속에서 구체적인 지지세력을 찾을 수 있는 정책을 먼저 해야 한다. 진보정부가 하고자 하는 일들은 대부분 공공성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꼭 필요한 일이지만, 문제는 공공성은 공공의 이해에 봉사하지 개인의 이해에 봉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지세력은 찾기 힘들고 반대세력은 쉽게 찾아진다. 개혁을 초창기에 하지 않으면 힘이 빠져 못한다는 말이 정말로 불변의 진리인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탄탄한 지지세력을 조직해 나갈 수 있는 작은 정책부터 시작해서 임기 말에 돌이킬 수 없는 개혁을 이루는 것이 나은 전략일 수도 있다.

두 번째 시도는 철저하게 전략적이어야 한다. 예측 가능한 개혁의 방식에서 벗어나는 냉정이 필요하다.

<장덕진 |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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