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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사람은 말로는 창작의 미래를 논하지만 마음은 종이만화, 종이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이런 나를 걱정해준 친구가 얼마전 흥미로운 글을 보냈다. 책이 안 팔린다 안 팔린다 해도 이른바 ‘숏폼교양’처럼 주제를 넓고 얕게 다루는 책은 잘 팔린다는 내용이었다. 친구의 마음씀이 고마웠다. 하지만 나는 “이런 창작물은 플랫폼과 작가의 셈법이 엇갈린다”고 답했다.
플랫폼과 창작자, 둘의 이해관계가 부딪친다는 의미는 아니다. 한쪽이 착취를 당하고 다른 한쪽이 폭리를 취하는 관계가 아니다. 작가가 잘돼야 플랫폼도 좋다. 플랫폼이 망하면 작가도 굶는다. 하지만 둘의 이해가 미묘하게 엇갈리는 부분도 있다. 브랜드 구축이라는 문제가 특히 그렇다. 플랫폼은 플랫폼의 성격에 맞는 작품을, 작가는 자기 색깔이 뚜렷한 작품을 원한다.
옛날에도 그랬다. 교황청이 창작자 미켈란젤로한테 창작물 ‘최후의 심판’을 의뢰했다. 클라이언트의 바람은 좋은 작품을 납품받아 시스티나 예배당이라는 플랫폼의 방문자에게 깊은 인상을 주는 것이다. 그런데 ‘콘텐트 프루바이더’ 미켈란젤로는 자기 브랜드가 우선인 사람이었다. 자기는 ‘근육근육’을 잘 그린다며 성당 벽을 벌거숭이로 메웠다. “교회가 아니라 대중목욕탕 같다”며 교황청 관리 비아조가 항의하자, 미켈란젤로는 비아조까지 벌거벗긴 모습으로 벽화에 그려 넣었다. 물론 ‘최후의 심판’은 시스티나 예배당의 브랜드를 높였다. 하지만 미켈란젤로가 자기 이름값을 높인 결과로 그렇게 된 것이다. 이런 예가 창작의 역사에 얼마나 많은지, 나는 ‘미술가의 브랜드 전략’이라는 주제로 월간지 칼럼을 제법 오래 연재하기도 했다.
내 브랜딩 이야기를 하다 말고 나는 어찌 감히 위대한 미켈란젤로의 예를 들까? 요즘의 도서시장을 비관하다 못해 미쳐버린 걸까? 그럴 가능성이 없지야 않겠지만(요즘 책 팔리는 거 보면 미치겠다), 그보다는 평범한 작가의 예를 들고 싶어도 들 수가 없어서 그렇다. 자기 브랜드를 들이대지 않던 온순한 작가들은 이미 이름이 잊혔기 때문이다.
요컨대 ‘잘되는 작품’에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작가 이름보다 플랫폼 이름이 눈에 띄는 경우다. 감독보다 ‘마블’이 앞서는 프랜차이즈 영화도, 위에 말한 스낵교양 시리즈도 그 예다. 다른 하나는 작가 브랜드가 돋보이는 유형이다. 한때 주목받았으나 요즘은 시장에서 인기가 없다. 플랫폼도 창작자도 함께 만족할 방법은 없을까? 친구와 이야기하다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데 지면이 부족해 적지 못한다. 못 적는다며 말은 왜 꺼냈나? 다음 칼럼도 읽어주십사 독자님께 읍소하기 위해서다.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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