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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어달 전 여행작가 이동미씨가 자신의 이름을 딴 책 <동미>를 냈다. 이 책은 독일에서 만난 남자친구와의 사랑 이야기이다. 동미씨의 남자친구는 아이가 둘 있는 독일인이다. “왜 아이가 둘 있다는 얘기까지 썼어?” 동미씨의 어머니는 책이 나오자마자 작가를 타박했다고 한다.

동미씨는 기자였다. 잡지사 편집장도 했다. 서울 경리단길에서 친구와 함께 바까지 운영했다.동미씨는 남자친구를 데이팅 앱 ‘틴더’를 통해 베를린에서 만났다. “천날만날 노처녀끼리 모여서 소주나 마시면 어떻게 남자가 생기겠어?” 친구가 권유했다. 데이팅 앱 깔고 남자 한번 만나보라고. 앱을 통해 연락해온 네번째 남자가 스벤이다.

동미씨는 스벤과 사랑에 빠졌고, 지금 동거 중이다. “결혼은 언제 해?” 친구들은 동미씨에게 묻는다. “결혼이야 나중에 필요하면 하는 거고, 아니면 말고.” 스벤도 동미씨에게 물었다고 한다. “20대에 결혼해서 와이프와 17년을 살았어, 난 파트너와 산다는 게 어떤 건지 알아. 너는 평생 혼자 살았고, 동거 경험도 없잖아. 누구랑 같이 산다는 게 쉽지 않은데 잘할 수 있겠어?”

학교를 졸업하면, 직장을 얻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고…. 이제 많은 사람들의 생애주기는 이런 식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비혼주의자도 많다. 비혼주의자라 해도 파트너와 사는 사람도 있다.

요즘 가장 많은 가구 형태는 1인 가구로 30.2%(2019년)나 된다. 10년 전 15.5%보다 2배 늘었다. 예전에도 직장 또는 학업 때문에 가족과 떨어져 사는 1인 가구는 있었다. 다만 결혼, 자녀를 당연시하는 ‘임시적 1인 가구’였다. 사람들은 보통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가족을 ‘정상’이라고 여기는데, 그것이 ‘옳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다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수자를 ‘비정상’으로 몰아붙이곤 했다. 성소수자에게도, 장애인에게도 그랬다. 다수성을 정상성의 기준으로 보면 1인 가족이 가장 정상적인 셈이 됐다.

핵가족이 등장한 것은 산업화 때문이다. 집 앞 논바닥에 사무실과 공장이 없었기 때문에 도시로 갔다. 1인 가족이 대세인 것도 사회 경제적 환경과 무관하지 않다. 노동 형태도, 육아·교육도, 주거 조건도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문제는 청년들에게 결코 유리하지 않게 변했다는 점이다.

청년들에게 세상은 사다리는 적고 크레바스는 많은 세상이다. 패자부활전이 없는 사회에서 한번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기 힘들다. 크레바스에 빠졌다 치자. 자일을 잘라 ‘나’를 포기하면 남은 가족이 잘 살 수 있을까? 취업 구멍을 뚫었다 해도 아이를 들쳐업고 사다리를 올라야 한다. 청년들에게 결혼하고, 아이를 갖는 것이 ‘이인삼각 경기’ ‘허들 경기’처럼 여겨질 수 있다. 김희경은 <이상한 정상가족>에서 이렇게 썼다. “삶은 집단주의적이고 해법은 개인주의적이다. 개인의 개별성을 별로 인정하지 않는 가족과 온갖 배타적 관계에 둘러싸여 집단주의적으로 살아가면서 육아, 교육, 주거 등은 다 각자 알아서 개인적으로 해결해야 하니까 말이다.”

몇해 전부터 입길에 오른 ‘해혼’이나 ‘졸혼’도 이런 시류를 반영하고 있다. 집단적 책임, 배타적 관계로부터의 자유!

세상이 변했다고 하지만, 결혼의례는 아직도 대가족 시대의 전통을 잇고 있다. 혼인의 주인공은 신랑·신부이지만, 혼주는 양가 부모다. 서로 도와야 한다는 품앗이 전통의 영향으로만 해석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상당한 의례 비용을 댈 수 있는 경제력이 있는 사람이 부모들이기 때문에 부모가 혼주가 되어왔던 것이다. 그래서 하객의 절반 이상이 신랑·신부는 얼굴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결국 결혼에도 부모의 재력이 필요하다. 청년은 가난하고, ‘좋았던’ 시절 아파트라도 사놨던 노인은 넉넉하다.

하여간 가족 구조의 변화는 사회 전반에 변혁을 요구할 것이다. 하다못해 이혼 소송에서도 ‘가족해체’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고정관념도 줄어들 것이다. 배상금이 아니라 위로금이란 뉘앙스로 읽히는 위자료보다 재산의 엄격한 분할과 양육비의 강제집행 등이 더 중요해질 것이다. 파트너로 이뤄진 가족도 늘어날 텐데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정부는 가족 형태의 변화를 인구 문제로 연결시키고, 이를 산업경쟁력으로 판단해 출생률 증대에만 몰두하고 있다.

인간적 삶이 먼저다. 프랑스처럼 동거인에게 법적 혜택까지 주지는 못하더라도 이참에 제도적 논의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최병준 후마니타스연구소장·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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