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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이야기. 피렌체의 두오모 대성당은 거대한 돔으로 유명하다. 흥미로운 점이 있다. 도시국가 피렌체가 돔을 짓자고 결정할 당시만 해도 돔을 지을 건축가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일단 아이디어부터 던진 셈이다. 마침 브루넬레스키라는 사람이 옛날 로마 시대의 유적을 연구해 돔 짓는 법을 연구한 터라, 돔 건설을 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 브루넬레스키는 천재라는 명예를 누렸다.

아이디어 내는 사람이 따로 있고, 정말로 만드는 사람이 따로 있다. 명예는 누구에게 갔나? 피렌체 시의회가 아니라 브루넬레스키에게 돌아갔다. 물론 오랜 시간 노동자들의 수고 없이는 돔을 지을 수 없었겠지만 말이다.

두번째 이야기. 조선의 흥선대원군은 난초 그림을 잘 그렸다. 아들 고종 임금이 왕이 되기 전에도 난초 치는 솜씨가 유명했지만, 임금의 아버지가 된 다음 그의 작품은 더욱 귀한 값을 받았다. 대원군은 훗날 청나라에 잡혀가는데, 이때 “조선 귀인의 작품”이라 하여 그림을 얻어가려는 청나라 수집가가 많았다. 주문이 밀려들었다. 

남의 나라에 잡혀온 신세가 우울했던 탓일까, 청나라 사람들이 괘씸했던 탓일까, 아니면 그저 바빠서였을까? 대원군은 작품 값은 작품 값대로 받고 대필 작가를 시켜 난초 그림을 그린 후, 자신은 낙관만 찍었다고 한다.

요즘 말로 하면 대원군은 ‘셀럽’이다. 돌에 자란 억센 난초라는 아이디어를 기획했고, 갈고 닦은 솜씨로 난초를 그렸으며(나중에는 직접 안 그렸다), 셀럽의 이름이 담긴 브랜드를 덧붙였다. 이 가운데 청나라 수집가들이 특히 높게 쳐준 것은 무엇일까? 임금의 아버지라는 작가 브랜드였던 것 같다.

창작에는 문턱이 있다. 두오모 대성당의 돔을 지으며 그 문턱을 넘은 사람은 피렌체의 시의회가 아니라 창작자 브루넬레스키였다. 명예는 브루넬레스키에게 돌아갔다. 청나라에 가서 난초를 그리며 문턱을 넘은 사람은 대원군이 고용한 화가였는데, 명예는 ‘당대의 셀럽’ 대원군에게 돌아갔다.

문턱이 없는 창작의 시대가 열렸다. 인공지능이 쓸 만한 그림을 그려주면서부터다. 말만 잘 골라 넣으면 근사한 그림을 뽑아낼 수 있다. 창작의 영광은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아이디어를 낸 우리인가, 아니면 신통방통한 인공지능인가? 그 인공지능을 개발한 개발사인가?

새로운 시대, 창작자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이 창작자인가? 그렇다면 결정권을 가진 사람이, 브루넬레스키가 아닌 피렌체 시의회가 두오모 건축의 명예를 누리게 될 수도 있다. 직접 작품을 만드는 쪽이 창작자인가? 그렇다면 그림을 그려주는 인공지능에게 창작의 영광을 돌려야 할지도 모른다(두오모의 벽돌을 나른 노동자나 난초를 대신 그려준 대필 작가가 창작자의 명예를 누려야 한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혹시 대원군처럼 자기 이름을 찍어주는 사람이 진짜 창작자일까? 그렇다면 바깥세상의 셀럽들이 예술계로 몰려오는 새로운 시장이 열릴 수도 있다.

그렇다면 예술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왜 창작을 하는가?

<김태권 만화가>

 

 

연재 | 창작의 미래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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