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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기준 대한민국 노인 빈곤율은 40%가 넘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우리의 노인 빈곤율 통계가 산출된 이래 줄곧 1위를 고수했다. 우리가 처음 OECD에 가입한 1990년대 중반만 해도 기존 회원들은 대부분 선진국이었다. 이 때문에 각종 통계에서 우리는 좋은 것은 최하위권, 나쁜 것은 최상위권에 놓였다. 이후 결코 선진국이라 보기 어려운 나라들이 대거 가입한 덕에 이제는 많은 항목에서 우리의 순위가 상승했다. 예를 들면 2020년 우리의 1인당 GDP는 통계가 제공된 35개국 중 18위, 딱 중간이다. 근로 연령대 빈곤율은 통계가 제공된 37개국 중 14위이다. 하지만 노인 빈곤율만은 우리가 부동의 1위이다. 

우리의 노인 빈곤율이 매우 높은 까닭은 자명하다. 공적연금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들은 대부분 공적연금이 노후소득의 절반을 훌쩍 넘는다. 우리는 4분의 1 정도만 담당한다. 프랑스의 노인 빈곤율은 공적연금을 제외하고 계산하면 80%가 넘는다. 하지만 공적연금 덕에 실제 노인 빈곤율은 5% 미만이다. 프랑스뿐만 아니다. 다수의 유럽 복지국가는 공적연금 덕에 노인 빈곤율이 근로 연령대 빈곤율보다 낮다. 은퇴한 노인들이 일하는 근로 연령층보다 더 여유로운 생활을 누린다. 그러나 우리의 노인 빈곤율은 근로 연령대 빈곤율의 세 배가 훨씬 넘는다.

국민연금을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국민연금 개혁은 윤석열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대통령 후보의 공약이었다. 정부 국정과제에도 포함되어 있으며, 비록 개점휴업 상태이기는 해도 국회에 연금개혁특별위원회라는 것도 만들어졌다. 워낙 정국이 어수선하고 다급히 해결해야 할 현안 과제가 산적한 탓에 연금개혁 논의가 묻힌 감은 있다. 하지만 연금개혁은 정말 중요하고 꼭 해내야 한다.

연금 가입기간 짧아 수급률 낮아

향후 이루어질(혹은 이뤄져야 할) 연금개혁은 어떤 내용을 담을 것인가. 우선 보험료율 인상이 포함될 것은 분명하다. 현행 국민연금이 낸 것보다 많이 받는 구조라서 이대로 가면 2050년대 중반에는 연금기금이 소진되는데, 그 이후에도 계속 연금을 지급하려면 보험료율을 30%까지 높여야 한다. 기금소진 때까지 현행구조를 유지하다 그 이후 갑자기 보험료율을 몇 배 높이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당연히 훨씬 전부터 보험료율을 조금씩 올려서 연금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보험료율 인상이 향후 연금개혁의 핵심의제가 될 것임은 분명하지만, 이와 함께 노후소득보장 강화도 주요 의제가 되어야 한다. 어느 나라든 공적연금의 양대 목표는 재정의 지속 가능성과 적정 노후소득보장이다. 노후소득보장 기능에 문제 있는 것이 분명한데, 이는 도외시하고 부담만 늘리는 개혁안은 국민(혹은 이해관계집단)이 받아들이지 않는다. 

공적연금의 노후소득보장 기능을 강화한다는 것은, 더 많은 사람이 연금을 받고 급여액도 더 높아진다는 말이니 연금지출이 훨씬 늘어야 한다. 그런데 그리되면 재정 지속 가능성은 더 나빠지지 않을까? 이게 좀 복잡한 문제다. 확실히 연금지출 증가가 재정 지속 가능성에는 좋을 리 없다. 그런데 지출 증가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느냐에 따라 지속 가능성에 미치는 영향은 크게 달라진다. 

분명히 다른 OECD 국가에 비해 우리 공적연금의 노후소득보장 기능은 몹시 취약하다. 그런데 그 이유가 급여액이 낮게 설계되었기 때문은 아니다. 동일 기간 가입을 가정하고 계산하면, 우리의 연금수급액은 OECD 평균 정도이다. 하지만 실상을 보면 우리의 연금수급액은 평균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우리의 연금 가입 기간이 다른 나라보다 월등히 짧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국민연금 수급률은 아주 낮고 수급액은 매우 적다. 

현 노인분들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국민연금 제도는 1980년대 말에 도입되었다. 전 국민을 포괄하게 된 것은 2000년대 들어서다. 그래서 현 노인세대는 미가입자가 많고, 가입자라도 보험료 납부 기간이 짧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미래에도 크게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데 있다. 웬만한 선진국은 성인의 80% 이상이 연금에 가입하고 보험료를 낸다. 가입 기간도 거의 40년에 육박한다. 우리의 가입률은 60% 정도이며, 30년 뒤에도 연금수급자의 평균 가입 기간은 25년 미만일 것으로 전망된다. 연금 미가입자 비율이 훨씬 높고 가입자의 보험료 납부 기간이 형편없이 짧으니 노후소득보장 기능이 취약할 수밖에 없다.

고소득층 혜택 많은 기이한 제도

복지제도의 혜택은 어느 소득계층이 더 많이 누릴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저소득층이 더 많은 혜택을 누릴 것 같다. 하지만 국민연금제도는 정반대다. 고소득층이 월등히 많은 혜택을 누린다. 국민연금은 낸 것보다 많이 받는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100을 내고 200 이상을 받는다. 낸 것보다 많이 받는 금액은 가입 기간에 비례한다. 가입 기간이 길수록 초과혜택 금액은 늘어난다. 30년 가입자는 연간 500만원 이상, 15년 가입자는 250만원 이상 보조금을 받는다. 그런데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중에 어느 집단의 가입 기간이 더 길겠는가. 노후소득이 가장 불안할 취약계층은 아예 수급권을 확보하지도 못한다. 국민연금은 소득이 높을수록 더 많은 혜택을 누리는 기이한 복지제도이다. 가입 기간을 늘리는 것은 젊어서 더 많은 보험료를 내도록 하는 것, 스스로의 노후대비를 강화하는 것이다. 그래서 같은 노후소득보장 강화 방안이라도 기초연금 인상이나 연금급여율 인상과는 비할 바 없이 정부 재원 소요가 적다. 

정리하면, 가입 기간 확충은 정부재정부담이 적으니 효율적이다. 저소득계층에 더 많은 혜택이 가니 형평성도 높다. 일석이조의 노후소득보장 방안이다. 우리처럼 미가입자가 많고 가입 기간이 짧은 연금제도를 유지하는 나라는 달리 없다. 다른 나라라고 해서 국민이 자발적으로 오래 가입하는 게 아니다. 정부 정책 덕분에 가입 기간이 길다. 그런데 왜 우리 정부는 못할까? 한 세미나에서 이렇게 질문하자 여러 가지 답변이 나왔다. 그중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은 게 있다. “공무원은 국민연금 대상이 아니잖아요.”

<김태일 고려대 교수·좋은예산센터 소장>

 

 

연재 | 김태일의 좋은 정부 만들기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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