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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의 늦은 휴가. 경주에서 1박 하고 동해안의 해파랑길을 따라 북상하기로 했다. 강구항에서 물회로 점심을 때우고 삼척 부근을 지나는데 바닷가에 맞붙어 우뚝한 엘리베이터가 있고 큰 조형물들이 눈길을 끌었다. 수로부인에게 견우노인이 꽃을 꺾어 바친다는 설화를 바탕으로 꾸민 ‘수로부인헌화공원’이었다. 공원 한 귀퉁이의 안내판. 삼국유사의 원문에서 꽃은 다음과 같이 등장한다. “고천장 상유척촉화성개(절벽 높이가 천 길이요, 그 위에 철쭉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척촉화는 철쭉이다. 척촉의 훈을 새기면 머뭇거릴 척, 머뭇거릴 촉이다. 마음을 홀랑 뺏어가는 너무나 아름다운 꽃이었으니 그 앞을 좀체 떠나지 못하고 머뭇, 머뭇거린다 하여 척촉, 철쭉이라고 한 것이겠다.

7경주에서 삼척까지 오는 동안 즐비한 횟집과 모텔 사이로 이런 간판도 간혹 눈에 띄었다. ‘○○요양병원.’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길로 이승에서의 마지막을 앞둔 어르신들이 모여서 머무르는 곳이다. 시간의 절벽에 매달린 한 송이 철쭉꽃처럼.

제철도 아닌 시기에 철쭉을 불러내는 건 까닭이 있다. 시절이 하수상해서 그런가. 지난 주말 상주의 황금산에서 개나리를 보았다. 겨울의 입구에서 만난 뜻밖의 꽃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활공장이 있는 정상에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눈을 씻고 다시 보아도 낮은 자세로 활짝 피어 있는 건 철쭉이 아닌가. 급격한 기후변화의 와중에서 시절을 잘못 알고 어리둥절 서 있는 철쭉.

수상한 건 산중만이 아니다. 최근에 읽은 한 뉴스는 이런 절규를 담은 것이었다. 물대포에 맞아 돌아가시고도 돌아가야 할 곳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한 주검 앞에서 모욕당한 유족은 이런 글을 토하며 피울음을 삼킨다.

“저희들은 이미 충분히 아프고 슬프다. 부디 사람의 길을 포기하지 말아 달라.” 까마득한 신라 시대. 물의 길, 수로(水路)라는 이름을 가진 여인을 생각해본다. 지나칠 수 있건만 외면하지 않고 절벽으로 오른 노인도 헤아려본다. 그런 머뭇거리는 마음들이 끈적끈적하게 묻어 있는 척촉화도 떠올려본다. 철쭉, 진달래과의 낙엽관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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