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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상주의 갑장산으로 가는 꽃산행. 상주보를 지나며 콘크리트로 성형수술한 낙동강을 보려니 쓴맛이 저절로 나왔다. 이윽고 갑장산으로 좁은 길을 올라가는데 좌우로 야생화들이 쌀쌀한 날씨에 기를 펴지 못하고 있었다. 바야흐로 단풍이 드는 계절이었다. 꽃보다 잎이 더 예쁘네, 하려다가 말을 거두었다. 꽃은 꽃대로 잎은 잎대로 아름다울 뿐이다. 믿지 못할 눈을, 그것도 두 개나 가졌다지만 안목이 없다면 사기꾼이나 무당도 하늘같이 보이겠지.
산으로 들면 미련스럽게 꽃을 찾아 연신 눈을 두리번거린다. 그런 나에게 마지막까지 미끼를 던져두듯 핀 꽃들이 있다. 햇빛이 풍부하지 않고, 비가 부족하고, 무엇보다도 겨울까지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일까. 그리 뛰어난 꽃은 아니겠지만 전국 어디에서나 가을이 깊도록 보랏빛 색감을 뽐내며 우아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꽃, 꽃향유!
진동하는 꽃내음을 입안에 넣고 중얼거리며 갑장산 정상에 올랐더니 이런 표지석이 있다. “갑장산(甲長山). 일명 연악으로 불리는 상주의 안산(案山)이다. 정상은 상주 사람의 순후한 인심을 대변하듯 뾰족하면서도 모나지 않고 둥글다. 가뭄 때 기우제를 지내면 비가 오고, 부정한 매장을 하면 가뭄이 들었다는 영산(靈山)이요 상주 문학(文學)의 요람이다.”
상주 시내를 통과할 땐 곶감을 생각했는데 정상에 서서 이런 문장을 보자니 우리 시대에 시, 소설, 평론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이 지역 출신의 몇몇 문인이 떠올랐다. 멀리 문필봉 아래로 굽어보는 상주 들판이 원고지처럼 촘촘했다. 과연 상주로다. 높은 산의 정상 표지석에까지 이런 글을 새겨놓다니! 곶감으로 일군 상주의 달달한 문장은 이렇게 길고 멀리 높게 퍼져 흐르는가 보다. 이런 것이야말로 문학의 힘이겠다.
오늘은 원점회귀 산행이었다. 내려갈 때 보았다, 올라갈 때 봤던 그 꽃향유. 이 야생화는 이름도 이름이지만 모양새가 조금 특이하다. 우리의 얼굴이 밋밋한 뒤통수를 배경으로 이목구비가 한쪽으로 모여 있듯 꽃이 한쪽으로만 달려 있다. 한갓지고 무심한 곳에서 저물어가는 한해를 이윽히 바라보고 있는 꽃향유. 꿀풀과의 한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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