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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지자체에서는 처음으로 서울시에 프랜차이즈 분야 ‘불공정피해상담센터’가 개소됐다. 서울시는 중앙정부도 미처 신경을 쓰지 않던 시기에 청년고용할당제와 표준이력서를 도입하고, 대형마트 상생품목을 발표했으며 서울형 기초보장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개별 정책에 대한 호불호와 평가를 떠나 이러한 정책은 과히 선도적이라 할 만하다. 적어도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정책 집행에서만큼은 할 수 있는 근거보다, 안 되는 이유가 더 많은 한국 사회에서, 중앙정부도 아닌 지방정부가 그러하니 말이다.


물론 가지 않은 길이기에, 지방정부의 역할이 아니라는 등 볼멘소리가 나오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현재 매주 금요일마다 열리는 불공정피해상담센터의 상담예약이 꽉꽉 들어차는 걸 보면, 어려운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일에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역할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커져간다. 오히려 공정거래위원회까지 갔다가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서울시 상담센터를 찾아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가 절반을 넘는다. 공정거래위는 상담인력이 부서와 상관없이 순환으로 근무하다보니, 상담을 통한 해법 모색이 쉽지 않은 구조다.


화장품 가게 (경향DB)


나는 이 상담센터의 코디네이터로 참여해 애끊는 사연들을 매주 접하고 있다. 연령도, 업종도, 불공정의 형태도 너무 다양해서 유형화하기가 쉽지 않다. 이는 그만큼 프랜차이즈의 불공정 행태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해 그야말로 ‘창조경제’를 창출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대기업일수록 불공정행위의 도가 지나치고, 중소기업이라도 대기업과 합병하거나 몸집을 부풀리면서 대기업의 그것을 적용한다. 여기에 대형마트나 백화점이 낀 ‘샵앤샵’의 경우는 문제가 더욱 복잡해진다. 본사와 대형마트 간에 어떤 계약이 체결되었는지 가맹점주들에게 제대로 알려 주지 않은 채, 그걸 무기로 말을 안 들으면 쫓겨난다는 협박이 일상이다.


남양유업 사태에서 빚어진 밀어내기와 유상할당은 이 업계의 기본이다. 이런 상담을 받고 있자니 슈퍼에서, 화장품 가게에서 연일 진행하는 ‘1+1’ 할인 행사도 달갑지가 않다. 싸다며 좋다고 사 먹던 할인상품이 결국은 가맹점주의 고혈을 짜내는 거였다니, 우리의 일상이 온통 프랜차이즈와 프랜차이즈의 불공정거래에 볼모로 잡힌 것 같다. 상담센터를 찾아왔던 나보다 나이 어린 화장품 가맹점주의 빨개진 눈과 떨리는 목소리가 자꾸만 겹쳐진다.


지난주 상담에는 공교롭게도 나와 동갑인 가맹점주가 두 명이나 있었다. 한 명은 언니와 함께 직장을 그만두고 모아둔 돈으로 가게를 냈는데 가까운 거리에 본사에서 똑같은 가게를 또 내준 것이다. 매출이 뚝 떨어진 원래 가게 주인은 가게를 접고 싶지만, 애매한 법 규정으로 폐업을 하면 막대한 손해를 보고 본인이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한 명은 남자 가맹점주였는데 이분 역시 빚을 내서 가게를 시작했다. 본사의 약속 불이행으로 적자만 늘고 있지만, 구제 방법이 없어 빚만 불리고 있는 셈이었다.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은퇴한 중년의 한 부부는 이러한 문제 때문에 남편이 대상포진에 걸리고, 가게를 내자고 조른 부인이 죄책감에 시달려 가정이 해체될 위기에까지 갔다고 한다.


대부분은 상담에서 폐업하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본사의 패악질에 지칠 대로 지친 그들은 장사를 이어갈 힘도, 이유도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상담을 진행하는 내내 나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근원적인 질문이 계속 맴돈다. 본사의 책임이 명확해서 일정의 보상을 받은 후 폐업을 한 그들은 그 이후에 어떻게 살아갈까? 자영업의 굴레가 아닌, 안정된 일자리를 다시 찾아갈 수 있을까? 상담을 끝내고 나가는 그들의 진짜 외로운 싸움은 그 문을 나설 때부터다. 그들이 마주하게 될 잔인한 일상과 거대한 프랜차이즈 벽 앞에서 그들이 삶을 계속 이어갈 수 있는 길, 그 길을 마련하기 위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모두가 머리를 맞댈 일이다.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2011 프랜차이즈·창업 부산국제박람회' (경향DB)



김영경 | 청년유니온 초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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