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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나이가 든 사람들을 두고 가지 않을 수 없소.” 알래스카 극지방의 유목민인 그위친족의 족장은 부족회의를 거친 후 분명한 목소리로 이렇게 외쳤습니다. 때문에 오랜 세월 동안 부족과 운명을 같이해왔던 두 늙은 여자 칙디야크와 사는 부족들로부터 버림을 받고 알래스카의 얼음 위에서 단둘이 남아야 했습니다. 칙디야크는 80세, 사는 76세일 때의 일입니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척박한 환경에 둘만 남아 스스로 삶을 꾸려가야 한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했습니다. 하지만 늙은 두 여자는 버려진 순간부터 놀라운 잠재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합니다. 몸은 노쇠해졌지만 생존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 같은 기억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두 사람은 오래전에 물고기를 너무 많이 잡아서 그걸 말리기 위해 저장고까지 만들어야 했던 개울을 찾아 나섭니다. <두 늙은 여자>(벨마 윌리스, 이봄)는 여성의 잠재능력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보여주는 감동적인 소설입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아사다 지로의 소설 <천국까지 100마일>(산성미디어)에서 나이가 마흔인 주인공 야스오는 사업 실패 후 버는 돈 모두를 이혼한 아내에게 양육비로 보내야 하는 거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칠순을 맞는 그의 어머니는 한시라도 약을 투입하지 않으면 언제 심장이 멈출지 모르는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어머니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도쿄에서 100마일 떨어진 카모우라의 한 병원에서 ‘신의 손’을 가진 의사에게 수술을 받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행복한 생활에만 관심이 있는 형들과 누나는 청상과부가 되어 40년이나 뼈가 빠지도록 일만 하며 4남매를 키워낸 어머니를 냉담하게 대합니다. 오직 파산자인 막내 야스오만이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 혼자의 힘으로 그곳으로 모셔 가려 합니다. 야스오는 빌린 고물 자동차의 조수석에 어머니를 앉히고 100마일을 달려갑니다. 어머니는 자신의 목숨을 연장함으로써 막내아들의 재기를 돕겠다는 놀라운 의지를 보여줍니다. 모자는 차 안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때 어머니는 이렇게 말합니다. “가난한 네게 도움을 받고 싶지 않아서야. 부자인 네게 버림을 받고 싶은 거지!”

“내일이면/ 엄마는 퇴원한다/ 형제들이 모였다/ 엄마를 누가 모실까/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다/ 큰형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요양원에 모시자/ 밀랍처럼 마음들이 녹는다/ 그렇게 모의하고 있을 때/ 병원에 있던 작은 형수/ 전화가 숨 넘어간다/ 어머니 상태가 갑자기 나빠지고 있다며……/ 퇴원 후를 걱정하던 바로 그 밤/ 자식들 역모를 눈치챘을까/ 서둘러 당신은/ 하늘길 떠나셨다”

<그때는 당신이 계셨고 지금은 내가 있습니다>(전병석, 어른의시간)에 실린 시 ‘역모’의 전문입니다. 나이 마흔에 혼자가 된 어머니는 4남1녀를 반듯하게 키워냈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모시겠다는 자식이 없자 저승길로 ‘알아서’ 떠나줍니다. 이후 막내아들은 2년 동안 어머니를 그리는 마음을 시로 써냅니다. 어머니는 이렇게 죽어서까지 자식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줍니다. 어머니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어주는 존재입니다.

흔히 21세기는 여성의 세기라고 말합니다. 정상이나 중심만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기만 하는, 즉 수직적 위계구조에 적합한 ‘계단식 사고’(남성적 사고)의 시대가 가고, 주어진 모든 정보를 연결해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즉 수평적 네트워크에 적합한 ‘거미집 사고’(여성적 사고)의 시대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여성들의 삶은 어떤가요? <괜찮은 남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페이퍼로드)의 저자 바버라 화이트헤드는 “골드미스의 연애는 왜 항상 실패로 끝이 나는 걸까?”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그는 “여자가 서른 넘어서 결혼하는 건 벼락 맞기보다 어려운 일”인 세상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평생 함께 살 사람’이나 ‘영혼의 동반자’를 찾을 수 없는 현실이 되니 비혼이 대세가 되어버렸습니다.

<초솔로사회>(마일스톤)의 저자인 아라카와 가즈히사는 2035년이 되면 “일본 인구의 절반이 솔로가 된다”고 경고합니다. 우리라고 다를까요? 제 주변을 살펴보아도 30대 여성의 절반 이상은 비혼을 꿈꾸고, 기혼 여성의 대부분은 비출산 의지를 보이고 있습니다.

올해 한국소설의 키워드는 ‘페미니즘’과 ‘퀴어’뿐이라고 합니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페미니즘이 사회 이슈가 되었는데 올해 초부터 ‘미투’ 운동이 전개되면서 그 움직임이 더욱 거세진 바람에 벌어지는 현상이라는 것이지요.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이런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방안을 지구상의 마지막 모계사회인 모쒀족에서 찾고자 합니다.

추 와이홍은 <어머니의 나라>(흐름출판)에서 “인류의 절반을 억압하고도 이를 정당화하는 가부장제를 채택한 대다수의 사회에 필요한 교훈을 얻었다. 모계제와 가모장제를 채택한 모쒀 사회가 가진 원칙은 우리 모두가 꿈꾸어볼 만한, 더 평등하고 더 나은 멋진 신세계를 마음속에 그릴 수 있게 해주었다”고 주장합니다. 

모쒀인들에게는 결혼이라는 개념이 완전히 부재합니다. 모쒀인들은 원할 때, 원하는 만큼의 연인을 찾을 수 있는 자유로운 존재입니다. 물론 이 모든 선택은 여성들이 주도합니다. 누구나 아샤오(연인)를 은밀하게, 공개적으로, 가족의 일원으로 삼아서, 혹은 부부로, 혼인증명서가 있거나 없는 형태로 만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 선택은 평생을 결정짓지 않습니다. 선택은 시기와 횟수에 구애받지 않고 열려 있습니다. 연달아, 동시에, 삶의 어느 국면에서나 자신의 의지에 따라 이루어지며 무제한으로 반복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정말로 곧 이런 세상이 오게 되는 것은 아닐까요?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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